1920년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1950·2000년대 성차별사회 관통
억압 벗어나려는 여성 삶 비춰
'본연의 나'로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편견이 있는 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회적 약자에겐 특히 더 그렇다. "세상이 이런 데 뭐", "다수가 이런데 뭐" 따위의 말은 본연의 나로 살고픈 사람들의 의지를 꺾고, 차별과 혐오를 만들 뿐이다. 사회적 약자의 앎과 관심,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태도는 본연의 나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1920년대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주부 로라(줄리앤 무어), 2000년대 미국 뉴욕에 사는 출판사 편집장 클래리사(메릴 스트립)다.
주인공들은 틀에 갇혀서 산다. 그들은 남편의 억압에서 벗어나 살고 싶고, 남들에게 비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살고 싶다.
영화는 세 여성의 각기 다른 하루를 담는데 연결고리는 <댈러웨이 부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쓴 작가고 로라는 책을 읽으며 공감한다. 클래리사는 책 속 주인공 이름과 똑같다. 그래서 에이즈에 걸린 옛 연인 리처드(에드 해리스)가 클래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른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시도한 이후 남편 레너드와 함께 요양차 런던에서 리치먼드로 이사한다. 그는 환청, 우울 등으로 힘들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남편의 간섭과 억압이다. 결국 버지니아 울프는 폭발한다.
"갇혀 있는데도 꾹 참았어요. 죄수 취급을 꾹 참았다고요! 어딜 가나 의사들이 따라다녀요. 어떤 게 내게 좋은지 그 의사들이 다 정해주죠. 날 위해서가 아니에요.", "난 어둠 속에서 혼자 고통받아요. 깊은 어둠 내 상태가 어떤지는 나만 알아요. 매일이 무서워요? 내가 사라질까봐? 레너드 나도 매일 그게 겁나요. 이건 내 권리예요. 모든 인간의 권리죠."
결국 버지니아 울프는 죽음을 택한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로라는 남들 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꾸린 듯하다. 하지만 공허하고 답답하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포기한 그는 끝내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
지난달 경남대표도서관에서 주최한 '일곱 편의 영화로 보는 페미니즘'의 강사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이 영화를 추천하면서 로라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 주목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징집된 남성들이 미국으로 돌아왔고 국가는 남성들에게 안정적인 직장과 편안한 가정을 제공했다. 이에 전쟁 기간에 남성들을 대신해 일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대거 해고됐다.
손 교수는 "1948년 여성 노동자 400만 명 중 300만 명이 해고됐고 1950년 초혼 연령, 대학 진학률이 떨어졌다"며 "또 여성들의 우울증약 복용률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로라와 친구의 대화 장면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 "남편들은 대단해"(친구), "전쟁 치르고 돌아왔으니 누릴 자격이 있지. 그 고생을 했는데"(로라), "뭘 누릴 자격?"(친구), "글쎄. 우리 같은 아내들? 이 모든 것들."(로라)
클래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 부르는 리처드는 로라의 첫째 아들이다. 소설가 리처드는 문학상 수상 축하 파티를 앞두고 클래리사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택한다. 아들의 부고를 전해듣고 클래리사 집에 온 로라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외톨이가 된 느낌에 자살 충동이 들 때가 있죠.(중략) 그날 밤에 계획을 세웠죠.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떠나기로요. 정말 그렇게 했죠. 어느 날 일어나서 아침을 차리고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탔어요.(중략)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죠. 후련할 거고요. 하지만 무슨 소용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죠? 감내해야죠. 그래요. 아무도 날 용서 못 하겠죠. 죽음 속에서 난 삶을 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