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잡으라 강조하는 여행 상품
어쩌다 이런 게 기회가 돼버렸나

긴 하루에 비해 주일이 빠르게 지난다. 월화수목금금금 때문일까. 마스크와 함께한 또 하루가 지난다. 눈 깜빡하자 계절이 바뀌고 있다.

백신을 맞은 친구들에게서 고열과 통증을 느낀다는 문자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문자를 동시에 받는다.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는 하늘 아래 동남아 스콜 같은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가 수시로 변하고 있다. 백신 공급 관련 루머들이 쏟아진다. 비라도 속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도 잠시, 자동차 세차를 걱정하는 생각이 스친다. 보다 길어진 낮 시간만큼 세상은 깨어있으라 말하는데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은 달콤한 휴식을 찾는다.

자정을 지나는 시계소리가 들린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려는 찰나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다다. 쇼 호스트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 프로모션을 내걸어 남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 남부에 있는 섬으로 초대한다. 눈을 의심한다. 얼리버드 구매로 외국여행이 가능해지는 양국 간 자가 격리가 해제되는 날부터 1년간 이용 가능한 상품이다. 다른 채널에서는 제주도 여행 상품이 판매 중이다.

정부의 백신 수급과 공급 계획에 따르면 1차(6월 1일~) 1300만 명 1차 접종 완료, 2차(7월 첫 주~9월) 3600만 명(누적) 1차 접종 완료, 3차(10월 이후~) 3600만 명(누적) 2차 접종 완료를 목표로 가족모임, 사적 모임 등 방역조치 완화 활동 및 다양한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 백신 1, 2차 접종자에 한해 입국 시 자가 격리를 면제해주기로 한 정부의 발표 앞에 외국여행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국에 누가 구매를 할까 말하기가 무섭게 매진 임박이란 문구가 화면을 채운다. 쇼 호스트는 계속해서 휴식을 강조하고 있다. 파격가를 강조하고 있다.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급증하기 전 미리 구매를 강조하고 있다. 손가락을 들어 슥- 한번만 결제하면 되는 일 앞에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리지만 두 채널을 비교하면 제주가 더 비싸다. 2022년엔 돈 줘도 비행기 표를 못 산다는 말이 들린다. 올해 추석과 내년 설 외국여행은 백신 기대감으로 이미 만원이다. 이번 기회에, 이번 기회에, 기회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어쩌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기회가 되어버렸을까.

접종 예약을 했지만 접종 당일 건강 상태 이상 등으로 접종을 하지 못해 남는 잔여 물량에 대한 당일 예약제도 개시하고 5월 27일 오후 1시부터 네이버나 카카오 앱을 통해 주변 의료기관에 남아있는 백신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과 계속되는 후유증 소식에 두려움이 공존한다. 물론 백신을 맞을 것이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축축한 손으로 아침에 열었던 현관문을 다시 연다. 꺼지지 않은 TV 불빛 사이로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가 있다. 베개를 고쳐주고 이불도 고쳐주며 쓰다듬는 머리칼. 어머니와 아버지도 이러한 일과를 반복했을 것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마스크와 함께하는 시대. 코로나 우울. 막연한 기대감. 힘든 일은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아이의 들숨과 날숨을 바라본다. 새근새근 잘도 잔다. 마스크 벗고 소중한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백신 매진 임박. 낮은 TV소리와 야심한 밤. 아무도 모르게 무거운 어깨 잠깐 내려놓고 한미 정상회담 넘어 백신 관련 뉴스를 보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