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성 음식 금지' 인식은 곧 비건생활 어렵게 만드는 요인
국내 채식인구 10년 만에 10배↑…맛있는 요리 많아져 곧 대중화

최근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그 원인은 물론 우리가 느끼는 지구 환경의 변화가 가장 많이 손꼽히는 듯하지만, 정작 채식인들의 대답은 무척 다양하다. 그중에는 소화가 잘 안 된다거나, 건강을 위해서라는 답을 비롯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라는 대답도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채식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마음을 깊이 돌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사람 또한 있다.

채식의 유형이나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땅에서 사는 동물만 먹지 않는다는 사람과 물에서 사는 동물까지 안 먹는 사람, 나아가 달걀과 우유까지 먹지 않는 비건 채식인들도 꽤 많다. 그리고 덩어리로 된 고기만 먹지 않는 사람이나 달걀은 먹지만 우유는 먹지 않는다는 사람도 존재한다. 채식으로 만들어진 가공식품도 먹지 않을 만큼 철저한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자연식물식을 하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그러한 추세에 조금 못 미치지 않는지 종종 생각한다. 채식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채식을 모든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만 한정 짓는 이도 있다. 이따금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은 채식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콩으로 만든 고기는 동물의 분뇨를 퇴비로 사용해 기른 콩으로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채식을 한다면서 콩고기는 왜 먹느냐는 질문까지 더하면, 채식을 마치 완전무결한 도덕적 행위가 돼야 하는 것처럼 인식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질문들이 채식을 실천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채식은 사실 누구나 쉽게 도전하고 그만둘 수 있는 선택 중의 하나인데, 채식에 대한 시선과 잣대를 엄격하게 가져가면 채식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된다. 다행히도 그러한 엄격함에서 벗어난 채식 운동 중의 하나가 바로 '고기 없는 월요일'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은 미국에서 시작됐으며, 지금은 세계적인 채식 환경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주일에 딱 하루, 육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채식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나는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을 하기 전 육식을 매우 좋아했다. 20대에는 거의 끼니마다 육식을 선호했고, 곱창볶음이나 삼겹살, 돈가스와 족발, 통닭과 쇠고기국밥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고서 쇠고기만은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단지 쇠고기만을 안 먹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채식이니 아니니 논란이 일 수도 있겠지만, 채식이라는 기준을 도대체 누가 세워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쇠고기를 안 먹겠다는 선언과 실천이 나름의 채식의 방식 중 하나라고 믿었다. 그러니 이때 채식은 채식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확립해 도전하는 신념적, 사상적, 윤리적 실천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생명에 대한 측은함을 가슴으로 느껴 시작한 것이었다.

채식을 권하는 수많은 채식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채식이 지구 환경에 끼치는 선한 영향이라든지, 공장식 축산업이 지닌 구조적인 문제 등에 관심을 둔 것도, 몸과 마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등을 공부한 것 역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였다.

즉, 채식을 시도하는 이유가 처음부터 반드시 구체적으로 설명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채식의 기준이 명확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채식을 시작할 만한 명분이 확실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단순히 '몸이 무거워서'와 같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고 일주일에 하루 또는 한 끼로 시작해도 충분하다. 그러니 채식의 문턱을 낮추되 규율처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방송에 출연한 채식인은 한 달에 열흘 정도는 육류와, 생선, 해산물, 계란과 우유 등을 먹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실천 중이라고 한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완벽하게 실천하는 한 사람보다 불완전하게 실천하는 여러 사람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자신도 실천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한 신문에 글을 기고한 초등학생은 어쩔 수 없이 멸치육수를 먹고 있지만 채식을 '고기를 생산하는 구조적 잘못에 대한 시위'라고 쓰고, 어른들이 자신 같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더 많이 알려줘야 한다며 나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한 장기 여행자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요리하기를 포기하고 주로 그곳에서 나는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으면서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채식을 시작한 지 13년 차가 됐으나 여전히 완벽하지는 못하다. 이따금 불가피하게 웃어른께서 정성껏 만드시고 권하시는 육식을 하기도 하고, 여행 도중 치즈 피자라도 먹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이처럼 채식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해야 할 필요도 없으므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처음부터 제대로 완벽하게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수년에 걸쳐 부딪히고 깨닫고 배우면서 단계적으로 비건이 된 사람들도 매우 많다. 내게는 콩고기나 밀고기 요리를 먹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채식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채식 요리는 맛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길든 입맛을 충족할 음식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채식 요리법이 온라인에 공개되고, 채식 가공식품들도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앞다투어 채식 라면을 출시한 바 있으며, 패스트푸드점도 채식 패티를 이용한 버거와 비건버거를 만들어 판매한다. 채식 음식을 옵션으로 제공하거나 오직 채식 음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아지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훨씬 더 많아졌다.

아울러, 국내 채식인구는 2008년 15만 명 수준에서 2018년 약 150만 명으로 늘었고, 세계의 채식 시장 규모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베지노믹스(vegetable economics)라는 말이 거론될 정도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점점 커지고 있어, 앞으로 채식이 대중적인 보통의 문화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제 채식을 하기 너무나 어려운 사회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셈이다.

문득, 어린 시절의 밥상에는 고기반찬이 올라오는 날이 무척 드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다. 고기는 없어도 제철 나물들과 잘 익은 김치, 보글보글 끓는 찌개. 그리고 이따금 들기름에 잘 구워진 김이 올려진 밥상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튀기거나 볶은 요리도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허전함을 느낀 적 또한 없었다. 우리의 밥상은 본래 채식이 더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채식은 그만큼 더 쉽고 가까운 일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서구의 영양학이 건강을 좌우하는 불문율처럼 통하면서, 라고 해도 우리는 너무 고기를 자주 먹고 많이 먹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선은, 작고 사소한 채식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채식으로 말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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