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사건 꾸준히 기록
별정직 합격해 조사·기획 담당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을 꾸준히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 구자환(53·사진) 영화감독이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서 일하게 됐다.

구 감독은 최근 5급 상당의 별정직 공무원 채용에 응시해 지난 19일 최종합격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앞으로 3년간 조사1국에서 진실규명 조사 및 기획을 담당할 예정이다.

구 감독은 2003~2019년 <민중의 소리> 기자로 활동하면서 민간인 학살 다큐멘터리 세 편을 제작했다. 경남에서 일어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레드 툼(Red Tomb)>(2013년), 전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담은 <해원>(2017년), 충남 태안군에서 일어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을 기록한 <태안>(2020년> 등이다.

그가 민간인 학살 사건을 카메라로 기록하게 된 계기는 2004년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유골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다. 현장을 취재하던 구 감독은 지역민에게서 '마을에 조그마한 계곡이 있는데 그 당시엔 죽은 사람들의 핏물이 흘러넘쳤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고 이 일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 30대던 구 감독은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다"며 20년 가까이 민간인 학살 사건을 수집하고 끈질기게 추적했다. 보람도 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 영화를 찍으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진상조사를 요구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독립영화다 보니 상영관 잡기가 어려웠고 제작지원금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빚이 쌓였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게 된 구자환 영화감독. /경남도민일보 DB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게 된 구자환 영화감독. /경남도민일보 DB

그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채용공고를 보고 사실 망설였다. 포기를 하고 있다가 영화 만들면서 만났던 연구자가 '왜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며 무조건 하라고 했다. 이 일이 진실화해위에서만 끝나는 일이 아니고 이후에도 이어질 일이니 터를 잘 닦아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 감독은 아르바이트 면접 외에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면접을 보았다. 민간인 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이 나이에 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구 감독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꾸준히 기록한 시간과 노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진실화해위에서 잘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보도연맹 유족들은 돌아가셨고 기억도 흐려지셨다. 목격자도 많이 돌아가셔서 (더 이상 미루면)정말 힘들어진다. 지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없어진 역사가 되니 하나라도 더 찾아야 한다."

구 감독은 현재 <빨갱이 무덤>이라는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책을 집필 중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형태다.

내달부터 진실화해위에서 일하게 되는 구 감독은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그동안 해온 만큼 충실하게 하겠다"며 "그동안 못 뛰어다녔던 원을 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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