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까지 독주회 한 스승 동경
청중 찾는 무대 끊임없이 개발
22일 창원시립교향악단과 협연
화려함 덜어낸 바흐 음악 몰두
비울수록 상상력·공간감 생겨

다가오는 22일 창원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앞둔 박정국(39) 피아니스트. 지난 13일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창신대 음악학과 연구실을 찾았다. 책상보다 큰 피아노 두 대가 놓여 있는 곳에서 학생과 실기 수업을 마친 직후 그를 만나 지나온 날과 앞으로의 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어머니와 피아노 = 6살에 피아노를 처음 만져봤다. 포항시 용호동 이름도 가물가물한 동네 피아노학원을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어머니는 아들이 악보도 보고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친구들은 뒷산에 놀러 뛰어가고 하는데 저는 참고 피아노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니의 신앙심으로 시작한 배움에 어느덧 노력이 쌓여 삼익피아노사가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11살 때 준대상, 이듬해 12살 때 대상을 받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재능을 키워 주셨어요."

유학을 가기 전까지 그의 조율사는 단 한 사람이었다. 포항서 예고 진학을 위해 이사를 간 대구까지 때마다 찾아왔는데 우연이 필연을 만들었다. 어느 겨울날 정국의 집에 피아노를 살피러 왔던 조율사는 작은 피아노 위의 트로피를 발견하고 묻는다. 혹시 부상으로 받은 피아노를 기증한 적이 있느냐고. 4년 전 조율사의 아내가 다니던 교회에 피아노가 선물처럼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알아봤다.

자식이 피아노대회에서 1등을 하고 받은 부상인 피아노. 어린 정국은 구경도 못했는데,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삼익악기사 포항대리점에 전화해 미자립 가난한 교회에 기증해 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인연으로 조율사는 늘 돈도 받지 않고 정국의 피아노를 정성스레 살펴줬다.

▲ 박정국 피아니스트가 손 끝 감각에 집중하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박정국
▲ 박정국 피아니스트가 손 끝 감각에 집중하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박정국

◇상상력을 불어 넣는 음악 = 피아노 연주자 박정국. 자라면서 애정하는 작곡가도 변해 갔다. 어린 시절에는 쇼팽에 이끌렸는데, 20대 초반에는 리스트에 심취했다. 조금 지나서는 곡을 들으면 이미지가 형상화되는 드뷔시, 라벨 같은 작곡가들이 좋았다. 최근에는 바흐에 몰두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 같은 경우는 하나하나 점으로 다 찍어서 누가 봐도 화려하고 풍부한 화성으로 사람의 감정을 파고들잖아요. 예전에는 그런 곡에 매료됐는데 요즘은 화려한 잎사귀를 거두고 기본적인 뿌리와 나뭇가지만 있는 바흐 음악이 좋습니다. 연주자에게 상상력을 불어넣게 하거든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채울까, 더 많은 것을 집어넣어서 표현할까 고민했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는 그는 갈수록 비워내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한다. 선명한 나무 두 그루가 눈앞에 있는데, 나무 하나를 뒤로 보내야 공간감도 생긴다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학생을 가르칠 때 늘 강조하는 것은 연주란 자신과 싸움이기도 하지만 결국 청중이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연주를 청중이 듣게 만드는 무대를 기획하고 그 경험을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6년 창신대 교수를 맡은 첫해부터 음악학과 정기연주회 외연을 확장했다.

"학생들 정기연주회 대부분은 가족이나 지인들이 찾는 것에 그칩니다. 400~500석 규모 소극장에 텅텅 빈자리도 보이죠. 제가 교수가 되기 전에 기획했던 미술 작품과 연주를 연계한 무대 경험을 살려서 학생들과 새롭게 만들었죠. 슈만과 쇼팽, 모네와 루소 등을 연결해 '보는 음악 듣는 미술'을 함께 꾸몄더니 관객 반응도 좋았고 좌석도 매진이었죠."

▲ 창신대학교 음악학과 박정국 교수가 지난 13일 교수연구실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br /><br />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창신대학교 음악학과 박정국 교수가 지난 13일 교수연구실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60대에도 열고 싶은 독주회 = 박정국은 2006년 연세대를 졸업한 이후 독일로 건너가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전문연주자 과정을, 자브뤼켄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제16회 스페인 마요르카 국제콩쿠르 특별상, 제15회 독일 발터기제킹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 2위, 제5회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모차르트 국제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귀국 후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독주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독주회를 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예전에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도 60대까지 매년 독주회를 하셨어요. 유년 시절 막연히 동경했던 모습이었는데, 막상 귀국 이후 첫 독주회를 하고 나서 과연 매년 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멈춤. 정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안 되겠더라고요.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공부하는 걸 포기할 수 없잖아요."

그의 연구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독주회 포스터를 살펴보니 디자인이 모두 같다. 해당 연도와 색상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퇴임하는 순간까지 저 포스터를 매년 내자는 게 목표라고 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지난 2월 광주에서 독주회를 열었고, 다가오는 5월에는 대전을 찾을 예정이다. 월드 투어 시리즈 숙제 해결에 나선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잡혔던 연주회 일정을 모두 연기해야 했기에 2년 만인 내년에 일본 도쿄 독주회를 시작으로 미국, 독일 등에서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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