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다름, 대화·이해 필요
물질문명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폭풍처럼 몰아치는 하루하루가 잠시 틈을 내어준다. 오랜만이다. 느지막하게 소파에 앉는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켠다. 채널을 돌리고 돌리다 다시 처음 채널로 돌아온다. 낯선 제목과 처음 보는 주인공이 보인다. 좀처럼 보지 못한 TV속 드라마 이야기가 낯설다. 배우는 대사를 이어가지만 소파에 앉아 멍하니 다시 반복될 내일 일을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순식간 전환되는 드라마 스토리 라인도 후루룩 지나간다. 불멍, 물멍처럼 영상을 쫓다보니 1화가 끝났다. '잠시 후 2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광고가 시작된다.

15초. 짧은 시간에 눈길을 사로잡아야하는 광고. 치킨과 족발 그리고 맥주. 채널을 돌리는 곳곳 먹는 프로그램이 야심을 지배하고 있다. 한손에는 리모컨을 들고 스르륵, 편한 자세로 고쳐 눕는다. 다른 한손을 들어 스마트폰 배달 앱을 검색한다. TV를 바라본다. 다시 앱을 바라본다. 손가락으로 슥- 긋고 결제까지 완료하자 문자 한 통이 수신된다. '주문하신 음식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음식이 잠시 뒤 눈앞에 도착할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어렵다. 먹고사는 일에 '잘'이라는 단어가 붙자 의미가 높아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더 많은 편리와 풍요로운 식탁 앞에서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누군가 말한다. "면접 중에도 업무 중에도 라떼 조심 꼰대 조심, 조심조심. 눈치 보느라 힘들었지. 걱정 마.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과감했던 X세대였잖아. 요즘 세대와도 잘 해보자." 70년대생에게 보내는 '잡코리아가 코리아에게' 광고다.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한다. "위로는 꽉 막히고 아래는 안 뽑아주고 조직의 허리로 사느라 허리가 휘지, 괜찮아 PC통신부터 5G까지 광속으로 적응한 너잖아. 올해는 더 좋은 곳으로 또 변화하자!" 80년대 생에게 보내는 광고와 "최초의 디지털 세대라 그런가, 취업까지 이렇게 디지털일 줄 몰랐지. 디지털 세상을 항해하며 일기 한 줄도 사이버 공간에 쓰던 너잖아. 처음 맞는 이 시대 넌 잘해낼 수 있어." 90년대 생에게 보내는 광고가 공감을 일으킨다. 각자의 어려움 속에서도 극복을 위한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위로가 스며들어 있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은 한편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능력과 과업의 난이도를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자신감이 있다. 내 능력과 관계없이 스스로 평가하는 자존감이 있다.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생성되지만 어떤 상황과 누구든 자신 안에서 직접 만들어가는 자존심이 있다. 자신감은 높아지지만 무슨 일인지 자존감은 낮아진다. 자존심은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다. 거국적인 말들보다 사소한 것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세대가 있다. 우리의 정신문명은 어디쯤 와 있을까 되돌아본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실수는 보다 쉽게 보인다.

각 세대 간 자라온 환경의 다름이 있다. 이러한 환경을 통해 누적된 경험이 사회에서 집합을 이룬다. 누군가는 교집합을 가지고 어떤 이는 교집합을 이루지 못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시선을 가지면 새로운 면이 보인다.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귀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계까지 발전하기 위해선 이해와 타협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질문명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배달완료' 문자와 함께 '똑똑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