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팔며 덤 끼워줘도 인사하는 사람 적어
미안해·고마워·사랑해 표현 인색한 우리

글의 제목을 습관대로 '헌책'이라고 썼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다음 떠오른 제목은 '중고 책'이었다. 중고 책이라고 하니 더 송구했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 책을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이놈의 습관 참 무섭다. 익숙한 모든 것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검열을 해야 할 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맞는다고 여기는 모든 것, 습관 된 모든 것은 사실 진실은커녕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닌 단어가 많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는데도 그대로인 습관. 그 습관 얘기를 하려고 한다. 본 책을 소재로.

좀 과장하자면, 내겐 피붙이 같은 책을 팔면서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끼워 넣기를 했다. 끼워 팔기가 아닌 끼워 넣기. 내가 보는 잡지들도 많았고 정식으로 출판되지는 않았어도 시민단체의 정기 간행물이나 단행본 소책자, 또는 행사에서 만든 좋은 자료집들이 많아서다. 내 책을 사는 분이 고른 책 제목을 기준으로 엇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넣어서 같이 보냈다. 반응이 참 다양했다. 그 다양한 반응 중에 고맙다는 반응은 가뭄에 콩이 나는 듯했다. 글쎄 1%나 될까? 2%? 덤으로 따라온 책자가 맘에 안 들었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보낸 책자 중 녹색평론, 지금여기, 귀농통문, 창작과 비평, 함께 사는 길, 생명평화등불 등은 환경과 영성 공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가벼운 책들이 아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습관이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습관. 항의와 불만에는 아주 익숙한 습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에는 인색하고 무덤덤한 습관. 그 습관이 주범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판단하게 된 사례들이 아주 많다.

한 번은 오강남 선생이 쓴 <기도>를 주문한 사람이 있었다. 슈타이너가 쓴 손바닥만 한 책 <기도와 명상>도 덤으로 넣어 이미 포장은 해 놨었다. 그분은 바로 안 보내면 취소하겠다고 엄포(!)부터 놨다. 신고하겠다, 고발하겠다, 상사에게 알리겠다, 책임자 누구냐? 등은 우리에게 습관 된 단어다. 차분차분 얘기를 이어가다 보니 그분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기도 주제의 설교를 하시고는 이 책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기도는 내가 그분(예수님, 신성, 부처)을 만나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되었다. 그분은 책이 늦는 걸 이해해 주었다.

켄 윌버의 <모든 것의 역사>를 산 어느 분은 책 속에 밑줄이 있다면서 책을 반납했다. 그분은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넣었다"라는 항의도 섞었다. 내가 넣은 책은 켄 윌버와 어울리는 <지금여기>와 <생명평화등불> 두 권이었다. <초인생활-히말라야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산 분도 같은 사례에 속한다.

작년 여름 긴 장마로 책 모퉁이에 곰팡이가 슨 책은 미세한 종이 사포로 닦아내고 보냈는데 반납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경위를 얘기했더니 바로 구매승인을 해 줬다. 상대방의 사정이나 설명을 들으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습관이다. 이걸 감히 '습관'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임'의 숭고함에 비할 바가 없어서다. 세상 모든 사람은, 세상 만물은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다 최선을 다해서 지금 이 순간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의식의 본질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 가슴의 본질은 그것을 수용하고 보살피는 것이다."(불광출판사 <받아들임>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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