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들판 중앙 가로지르면 청보리가 완연한 봄기운 알려
섬진강변에 핀 유채꽃·왕벚꽃 주행으로 쌓인 피로감 덜어줘
칠불사까지 마지막 5㎞ 고비 오르막 야수처럼…현실은 끙끙
경내 하얀 목련에 미소 한모금

섬진강과 은모래 강변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공원.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데다 오토캠핑장도 잘 조성돼 캠핑족에게 꽤 인기가 높은 곳이다. 자전거유람단의 출발지다. 이곳에서 도착지인 화개면 칠불사까지 왕복 54㎞ 정도로 대략 6시간 걸린다.

섬진강과 평사리들판에 반하다

평사리공원 주차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대봉감 생산지로 유명한 악양면 대축마을 방향으로 페달을 돌렸다. 대축마을에 다다르기 전 왼쪽으로 지방도로를 벗어나자 140만㎡ 규모의 광활한 평사리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 주민들은 평사리들판이라는 이름 대신 예로부터 '무딤이들'로 부르고 있다.

평사리들판 중앙을 가로지르는 시멘트로 포장한 농로를 따라가면 군데군데 자란 청보리가 완연한 봄의 기운을 알리고 있다. 이 길은 지리산둘레길 코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들판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평사리들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한 쌍의 소나무인 '부부송'과 새롭게 단장 중인 '동정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박경리 선생이 쓴 소설 <토지>의 배경이자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최참판댁 입구가 나타났다.

▲ 평사리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린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자란 청보리가 완연한 봄을 알린다. 들판 앞에는 산이 버티고 있다. 그 아래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이 있다. 어서 가자. /최석환 기자
▲ 평사리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린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자란 청보리가 완연한 봄을 알린다. 들판 앞에는 산이 버티고 있다. 그 아래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이 있다. 어서 가자. /최석환 기자

유람단은 관광객을 피하려고 입구에서 최참판댁 방향으로 가지 않고 한산사로 올라가는 왼쪽 길을 택했다. 100여 m의 가파른 길이 제법 숨을 가쁘게 했다. 초가집과 물레방아 주변에 핀 유채꽃밭을 지나 최참판댁에 도착했다. 유명 관광지답게 평일인 데도 관광객의 발길은 여전했다.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평사리들판 전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고서 다시 한산사 방향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한산사까지는 1㎞ 정도였다.

평탄했던 길은 서서히 오르막으로 바뀌었고, 절반쯤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을 마주했다. 가쁜 숨을 토해내며 지그재그로 간신히 한산사 가까이 왔을 때쯤 뒤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뒤따라오던 일행 한 명과 자전거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유람단 첫 여행지인 한산도에서 타이어 펑크가 났던 그 일행이었다. 그나마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심한 오르막에서는 자전거 핸들을 누르는 방식으로 주행을 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페달에 힘을 더 주려고 상체를 뒤쪽으로 젖히다가 앞타이어가 들리면서 쓰러졌다고 했다. 자전거 경험 부족 탓이겠지만, 우연한 사고로 필요한 지식을 몸소 경험한 셈이다.

한산사 앞에는 평사리들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설치돼 있었고, 도로를 따라 50m쯤 가자 섬진강과 평사리들판 전경을 두루 전망하는 커피숍이 나왔다. 전망대로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게 흠(?)이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전망을 선사했다. 여기서부터 국도 19호선으로 이어지는 도로(평사리공원 인근)까지 1㎞가량은 지리산 지안재처럼 심한 굴곡의 급경사 길이었다. 도로 중간마다 배수로도 있었다. 무작정 속도를 냈다가는 사고 위험이 커 속도를 줄여 천천히 내려와야 했다.

화개면까지 10㎞ 정도는 국도 19호선을 타고 가야 한다. 지금 이 구간은 4차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왕복 2차로만 통행할 수 있었다. 대형트럭과 승용차 등 차량 통행량이 많아 바짝 긴장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5㎞ 지점에서 반대 차로를 가로질러 섬진강에 접해 있는 자전거길로 이동했다. 작년에 자전거로 지나가면서 기억해뒀던 1㎞ 정도의 자전거 전용도로다. 섬진강 변에 자리 잡은 유채꽃과 탐스럽게 핀 왕벚꽃이 자전거 주행으로 쌓인 긴장감과 피로감을 덜어내 준다.

자전거도로가 끝나면 다시 반대 차로로 이동해야 한다. 국도 19호선을 타고 화개면 화개장터 방향으로 속도를 높였다. 차량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화개장터를 벗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지역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맛집으로 화개면에 올 때면 자주 찾는 곳이다. 주인이 직접 만든 순두부와 재첩국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 십리벚꽃길./최석환 기자
▲ 십리벚꽃길./최석환 기자

'벚꽃엔딩' 하동십리벚꽃길

화개면은 봄이면 도로 양옆으로 뻗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하동십리벚꽃길로 유명하다. 지난주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때가 지나선지 벚꽃은 반쯤 졌다. 화려한 벚꽃 자전거유람의 기대감은 진한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벚꽃을 대신해 도로 옆으로 드문드문 아담하게 핀 왕벚꽃을 위안으로 삼았다.

유월이면 섬진강과 지리산 청정계곡인 화개천이 만나는 화개면 강변에서 수박향 그윽한 은어를 잡으려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또다른 볼거리다. 화개장터에서 도착지인 칠불사까지는 15㎞ 정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화개장터~쌍계사 구간은 칠불사에서 복귀하는 길로 선택했다. 일행은 화개장터에서 화개교를 건너 칠불사로 가는 도로를 이용했다.

낮은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지만, 쉼 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량 행렬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10여 분 흘렀을까. 화개천 건너편으로 정금차밭이 나타났다. 산비탈에 조성된 비교적 큰 규모의 야생 녹차 밭이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정금차밭의 멋진 광경을 놓칠 수 있다. 쌍계사 인근 도로를 지나자마자 하류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의 암석을 품은 화개천의 색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 차밭. /최석환 기자
▲ 차밭. /최석환 기자

가파른 긴 오르막의 도전

화개천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신흥삼거리에 도착했다. 신흥삼거리에서 직진하면 지리산 벽소령 등산로 입구인 의신마을 방향이고 왼쪽으로 가면 목적지인 칠불사 길이다. 칠불사까지는 5㎞ 정도지만 대부분 심한 오르막길이어서 이번 일정에서 가장 힘든 코스다. 신흥삼거리 초입부터 오르막이다. 자전거 경력이 쌓이면 '오르막은 야수처럼, 내리막은 정승처럼 타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자전거 사고 대부분은 내리막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오르막을 야수처럼 타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열심히 훈련하더라도 쉽지 않다. 체력에 따라 속도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긴 오르막도 정승처럼 타야 정상부에 오를 수 있다.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페달에 힘을 실었다. 갈수록 높아지는 경사도 탓에 하체에 누적된 피로는 금방 온몸으로 전달됐다. 신흥삼거리에서 2.5㎞ 지점인 범왕마을회관 인근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휴식으로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목적지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다시 자전거 안장에 앉았다. 그 의지만으로는 체력을 감당할 수 없어 얼마 가지 못해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했다.

앞서 가던 일행 한 명은 도로 옆에 있던 평상에 대자로 뻗어 있었고 나 역시 똑같은 자세로 누웠다. 지리산 골짜기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지쳐 뻗은 몸을 위로해 주듯 온몸을 감쌌다. 일행들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경사가 급한 짧은 구간을 통과하자 완만한 경사의 도로가 나타났는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오름과 내림이 반복되는 도로를 지나 드디어 칠불사 일주문에 다다랐다. 칠불사 경내까지는 200m 채 안 되지만 페달에 힘을 실어야 할 정도로 오르막을 거쳐야 한다. 경내에 들어서자 속세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꽃망울을 터트린 하얀 목련 한 그루가 봄기운이 서린 절 정취를 더했다. 경내 근처에 있는 약수 한 사발로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칠불사로 오르기까지 1시간 넘게 걸렸지만, 신흥삼거리까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쌍계사와 하동차박물관, 화개장터를 거쳐 국도 19호선을 타고 출발지인 평사리공원으로 복귀했다.

▲ 칠불사. /최석환 기자
▲ 칠불사. /최석환 기자

◇볼거리 = 하동의 봄은 벚꽃길과 차밭을 지나 쌍계사와 칠불사로 이어진다. 화개삼거리에서 5㎞ 거리에 있는 쌍계사는 서기 723년(성덕왕 23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했다는 절이다.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를 흠모해 887년 세웠다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도 볼 수 있다. 이 절 부근은 이 나라의 차 시배지이기도 하다. 기후가 차 재배에 적당해 쌍계사를 중심으로 널리 차가 퍼져나갔으니 그 흔적과 역사도 찾아볼 만하다. 쌍계사에서 9㎞ 지점에는 칠불사가 있다. 서기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서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한 후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쌍계사와 함께 하동의 대표 사찰이다.

▲ 하동 재첩국. /최석환 기자
▲ 하동 재첩국. /최석환 기자

◇먹거리 = 자전거유람단은 하동군 화개면복지회관 인근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하동에선 재첩국(1만 원·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이다. 갱조개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조개는 신선하다. 맑은 국물을 내고, 깊은 풍미를 선물한다. 산 좋고 물 좋다는 하동을 빼닮았다. 한 그릇을 비우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놀거리 = 하동에 왔으니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화개장터를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현대식으로 새로 조성돼 옛 정취는 덜하다. 그러나 하동과 강 건너 전남 광양 등에서 넘어온 질 좋은 물건들이 많다. 인근 마을에서 재배했다는 송이버섯이 눈에 띈다. 이슬송이버섯, 매화송이버섯 등 다양한 종류의 송이를 참기름장에 곁들여 시식할 수 있다. 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특산품과 사람살이를 구경하는 것도 하동에서 잘 노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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