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 불편 탓에 끝나면 녹초
피로감 해결하고 소통 꽃피기를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한 해를 지나 다시 봄이 왔다. 이제는 비대면, 온라인, 화상회의 같은 단어들이 어디에 따라붙어도 놀랍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며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으로 업무 회의를 한다는 친구들 이야기도 익숙해졌다. 일 년 사이 다양한 활동이 온라인 화상회의로 대체되어 올해부터는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나도 매주 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마냥 재미있었는데, 몇 달 동안 화상회의를 해보니 낯선 불편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상회의 피로감, 일명 '줌 피로(Zoom Fatigue)'가 찾아온 것이다.

화상회의 참석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타인에게 부분적이나마 사적 공간과 일상적인 소음을 노출하게 되어 신경이 쓰인다. 주요 화상회의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불편을 완화하기 위해 '가상 배경 기능'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공적인 회의에서 사용하기에는 어색한 수준이다. 머무르는 시간에 제약이 없으니 회의 시간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진다는 점도 흔히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또 참석자들의 마이크를 통해 주변 소음이 계속 들려 발표자 말에 집중을 못 하거나,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참석자로 인해 대화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화면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카메라에 비치는 반경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도 피로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다.

요즘 나는 줌 회의를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된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화상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과 나의 얼굴을 오랫동안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피로했다. 회의를 하는 내내 대화창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랫동안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기도 할뿐더러 긴장감을 일으킨다. 코로나 이전에는 친밀하지 않은 타인들과 나의 얼굴을 동시에 화면으로 보면서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제레미 베일런슨 교수는 줌을 사용할 때처럼 빈번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 줌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가짜 소음을 내보내는 웹 위젯이 등장했다. 이 웹 위젯에서 송출하는 아기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접속 불량음, 공사음 등 불쾌한 소음은 참석자들의 짜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사용자는 소음을 핑계로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회의에서 탈출한다. 개발자인 샘 라빈이 직접 유튜브에 올린 사용법 소개 영상은 공개한 지 3주 만에 조회 수 22만 회를 넘겼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화상회의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 심정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 공감이 되어서 슬프기도 하다.

시간이 갈수록 만연해가는 줌 피로, 줌 번아웃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가볍게 피로를 완화할 수 있는 조언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업무나 학업과 관련된 온라인 화상회의에서 연결을 차단할 자유를 주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을 꼭 마주하지 않아도 괜찮은 회의라면 카메라를 끄고 음성으로만 대화하거나, 꼭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될 때는 음소거를 해두는 등 상황에 맞춘 유연한 운영이 필요하다. 온라인 화상회의가 열어준 새로운 가능성 아래에서 배려를 밑거름 삼아 다양한 형식의 소통이 꽃피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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