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 극락전은 지난해 벗이 보낸 카톡 사진에서 처음 뵈었다.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의 이 절을 오랜 남도 답사 왕래 길에 놓친 까닭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단박에 맞배지붕을 받쳐 쓴 극락전의 고졸한 멋에 감응하여 '하염없는 절이 하염없는 세월을 이고선 하염없이 또 오는 세월을 떠받히고 계시네'라 써봤다. 일하면서도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하염없는 보살행이 무위(無爲)의 가르침인가 싶어서다.

이 절은 단연 극락전 건축 양식 때문에 유명하다. 대부분의 사찰은 대웅전 같은 주불전이 큰 규모고 또한 팔작지붕으로 위용을 더하지만, 맞배지붕으로 국보에 오른 것은 이를 비롯해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등 몇 아니다. 조선 백자처럼 수더분하고 단출하지만 정제미를 갖춘 한국 건축물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절을 찾아 극락전을 참배하던 중 숨겨진 비경을 발견했다. 바로 불단 뒤편 후불벽면에 그려진 '아미타여래삼존도'다. 대체로 불단 뒤 괘불탱화만을 눈여겨보아 왔던 터라 이 벽화를 처음 봤을 때,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약간의 몸서리마저 느꼈다. 붉고 영롱한 광휘가 법당에 모신 주불상인 아미타불의 광배인 듯하였고, 그 붉은 색이, 채색인지 아니면 본래 붉은 황토를 바른 벽면의 원색이 세월을 머금어선지 알 순 없었지만, 화가 칸딘스키가 추상화의 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이상한 빛깔로 넘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충만'이라 한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 순간 한편에선 또 우리가 얼마나 서구 편향적인지, 또 이것은 내 존재에 대한 괄시와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새삼스러운 각성마저 일었다. 현란한 비잔틴 성벽화나 시스티나성당의 '천지창조' 천장벽화 따위를 알았지 언제 무위사 아미타삼존도의 이름을 들어보기나 했던가? 이 벽화의 또 다른 매력은 그림 상단의 여섯 나한상으로, 노을보다 짙은 채광 속에 상반신을 구름 가운데 드러낸 낯익은 모습이다. 원효일까, 의상인가, 의천과 지눌인지, 태고와 휴정일 듯도 한데,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으로 동토에서 아라한이 된 선사들의 진영 같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 벽화는 극락전과는 별개로 2009년에 국보(313호)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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