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조차 100% 사실인지 알 수 없는데
창작물이 기록 벗어났다고 왜곡이라니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를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드라마를 둘러싸고 한창 시끄러워졌을 때 나는 수십 회쯤 방영한 줄 알았다. 그러나 첫 회부터 논란이 일었고 고작 두 회를 끝으로 방송에서 사라졌다. 창작 작품에다 역사 왜곡을 따지는 무지함, 중국에 대한 반감, 문화예술을 조악한 정치로 재단하기, 표현의 자유 탄압 등 우리 사회 나쁜 건 죄다 끌어 모은 형국을 본 사태에서 본다.

<조선구마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드라마가 '조선 태종을 살인귀로 묘사하고, 세종이 서양인 신부의 시중을 들게' 했다는 것을 심각한 역사 왜곡의 근거로 들었다. 국왕이라도 개인 행적이 사실과 다르다면 그건 인물 왜곡이 될지 몰라도 역사 왜곡이 되지는 못한다. 조선 국왕들을 사료에 있는 것과 다르게 묘사했다고 해서 '조선 역사의 근간마저 뒤흔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봉건왕조 시대로 돌아가 전하 만세 부르며 살았어야 적합하다.

사실과 다른 인물 묘사가 인물 왜곡이 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창작물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곡은 창작물의 생명이요 불가결한 것이다. 왕조실록의 문자를 그대로 영상에 옮긴다면 모사이지 창작이라고 할 수 없다. 실록을 존중할까 말까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자유에 속한다. 드라마의 태종과 세종은 실존인물 그대로가 아니라 그것을 동기로 삼아 창작자의 상상을 한껏 입힌 것이다. 더욱이 실록조차 100% 사실을 담았는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기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창작물에 왜곡 운운하는 건 가당찮다.

드라마의 역사왜곡 논란은 <조선구마사>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사태가 엄청나게 커진 데는 일부 시청자들이 역사 왜곡 주장을 중국 혐오정서와 결부하면서였다. 중국을 띄워주려고 역사를 구부렸다는 혐의가 씌워지면서 드라마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급기야 중국의 동북공정 야욕에 부화뇌동하는 드라마로까지 몰리면서 생명은 끝났다. 근거라고 든 것이, 세종을 중국에 아부하는 군왕으로 묘사했다거나, 조선 정부가 다른 나라 사신 대접을 중국음식으로 했다거나, 작가의 개인 이력을 친중국 혐의에 갖다 붙이는 게 고작이다. 코로나19 초기 사태에서도 보듯 일부 한국인의 혐중국 감정은 정도가 지나치다. 혐중 감정은 중국이 미운 짓을 하니 우리도 미워하고 경계한다는 소박한 차원이 아니며, 미국과 일본의 대외정책 기조인 대중국 경계에 충실히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태도다. 보수주의자들이 자신의 구미에 들어맞지 않는 드라마를 희생양으로 삼아 한바탕 정치 바람을 일으킨 격이니 문화예술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조선구마사>가 정치적 의도로 드라마를 활용했고 한국 역사에 모욕을 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의도에 휘말려 철저히 짓밟히고 모욕당했을 뿐이다.

문화예술은 어떤 내용을 담든 숨 쉴 권리가 있다.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작품은 안보면 될 뿐 어느 누구도 작품의 생명을 끊어낼 권리는 없다. 작가나 방송계 인사들이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올바른 정신 상태로 무장하여 길이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나기를 맞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점은 알아서 피해 감으로써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은 치명적인 표현의 자유 탄압이다. 삼가, 마귀를 쫓아내기(구마)는커녕 뜻밖의 마귀들에게 처참하게 능욕 당한 드라마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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