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로 경찰 업무 늘어나
긴급 구호·사건 대응 지연 우려

한국은 다른 나라가 일부러 배우러 올 정도의 치안 강국이다. 오는 7월 1일이면 그 치안 시스템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다. 전국적으로 자치경찰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경남도청에서 '경남형 자치경찰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가 있었다. 지방행정·치안의 결합이 골자였다. 김경수 도지사도 도와 각 시군, 경찰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정 국민에게 이로운 자치경찰제를 만들어 가려면, '협업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융합치안행정'을 실현하려면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바로 지방행정이 과중한 부담에 놓이게 될 경찰의 업무부담을 나눠 짊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경찰은 주취자 신고 현장에 출동해 의식이 없으면 119에 연락한다. 구급차가 도착하는 사이 대부분의 주취자는 정신을 차린다. 구급대는 만취자가 아니면 이송에 곤란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인적사항이 확인돼 인근 노숙인 쉼터에 데려가도, 행패를 부리는 통에 받아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파출소에 데려와 건강상태를 주시하며 보호할 수밖에 없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4조(보호조치 등)를 보면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술에 취하여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지자체 당직자들이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현장에 나오지 않는 근거다.

하지만, 주취자 보호 업무는 경찰 한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취자가 노숙자일 때도 잦다. 노숙자 보호는 말할 것도 없이 지자체 담당이다. 늦은 밤 발견되는 노숙인들은 주로 술에 취해 있는데, 이를 모두 주취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결국, 24시간 깨어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모든 신고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2차 범죄 발생 가능성을 우려해 주취자 1명을 보호하고 있으면, 2명의 경찰관이 몇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더 다급한 신고의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과거 한 파출소에서 보호하던 주취자가 숨져 경찰관들이 손해배상한 판례도 있다.

주취자 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가장 힘겨운 정신질환자 신고가 들어왔을 때도, 병원과 병실을 찾지 못해 부산, 울산 타 지역까지 순찰차로 호송하는 사례가 매일 반복된다.

주말, 야간 도로에 적재물이 떨어져 교통이 마비된 현장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경찰은 현장조사에 바쁘고 지자체 당직 근무자는 제때 출동치 못해 사고처리가 지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사 역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범인 검거율은 2014년 91%에서 2019년 83.3%로 떨어졌다. 범죄는 점점 지능화, 신속화되어 추적 검거가 어려워지는데 인력과 시간은 오히려 줄어드는 셈이다.

경찰조직만으로는 업무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행정·경찰이 신속 공동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노숙인·아동 등을 위한 보호시설을 확충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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