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수집한 60점 공개
자연-인간-사회 이어지는 주제
공중에 붕 떠있는 조형물부터
초대형 캔버스 회화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 나와 관람객 압도

강줄기를 끼고 있는 기름진 평야, 그 위로 우뚝 솟은 나무와 수풀. 영남 권역을 아우르는 낙동강의 자연 풍광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웠던가.

밝고 어두운 조명이 교차하는 널찍한 전시장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평화를 느꼈다. 가로 324㎝, 세로 130㎝ 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 '낙동강의 자연, 자생, 자아'에는 두 열쇳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낙동강 주변 전경이 캔버스 2개에 옮겨졌는데,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풀숲과 푸르스름한 대자연이 시선을 잡아끈다. 바람을 만나 금방이라도 소리를 낼 것 같은 수풀들이 눈앞에서 흘러간다.

지난 1일 창원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시작된 새 전시 '신소장품 2017-2020 : 이어진 세계들' 1전시실 주제는 자연이다. 강복근 작가가 9년 전에 만든 '낙동강의 자연, 자생, 자아'를 비롯해 자연을 주제로 한 작업들이 이 공간에 등장한다.

▲ 강복근 작 '낙동강의 자연 자생, 자아(2012)'.
▲ 강복근 작 '낙동강의 자연 자생, 자아(2012)'.
▲ '질량보존의 법칙 - 환원(2017)'.생명체와 사물의 형태가 산소를 빼앗기고 분해되면서 또 다른 원소와 재결합돼 전혀 다른 객체로 바뀌는 과정을 시각화한 김근재 작가의 설치작품.
▲ '질량보존의 법칙 - 환원(2017)'.생명체와 사물의 형태가 산소를 빼앗기고 분해되면서 또 다른 원소와 재결합돼 전혀 다른 객체로 바뀌는 과정을 시각화한 김근재 작가의 설치작품.  /최석환 기자

김근재 작가의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조형물이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려 공중에 떠있다. 생명체와 사물의 형태가 산소를 빼앗기고 분해되면서 또 다른 원소와 재결합돼 전혀 다른 객체로 바뀌는 과정을 시각화한 '질량 보존의 법칙 - 환원'이다.

나뭇가지와 새, 꽃과 같은 자연 속에서 볼 법한 익숙한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낸 남여주 작가의 '리플렉티브(Reflective) 13024', 전남 구례군에 있는 연곡사와 그 주변 전경을 화폭에 옮겨온 이호신 작가의 '구례 피아골 연곡사', 부산 기장군 일광면 소재 달음산을 표현한 임호 작가의 '달음산', 생명을 주제로 만들어진 조각가 문신의 1989년 작 '탄생'도 내놨다.

▲ 송창 작 '매립지 - 신도시(1982)'.
▲ 송창 작 '매립지 - 신도시(1982)'.

미술관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생겨난 모든 존재를 자연으로 정의하고, 회화와 설치작품뿐 아니라 함양군 함양읍에 있는 상림공원에서 함양지역 청소년으로 구성된 다볕청소년관현악단이 '상림의 노래'라는 곡을 연주하는 모습 등을 담아낸 42분 분량의 영상물도 선보인다.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작곡가가 만든 합작품이 바로 이 작업이다. 두 사람이 지난 2014년 내놓은 4번째 협업 작품이기도 하다.

신소장품전 주제는 자연 말고도 두 가지가 더 있다. 2전시실은 인간, 3전시실과 특별전시실은 사회다. 2층 2전시실에선 '손 풍경' 연작을 그려온 정호 작가가 양 엄지손가락을 붙인 모습을 그려낸 작품 '무제; 2H_30F35'가 가장 눈에 띈다. 작품명은 두 개의 손, 30호 캔버스, 35개 조각이란 뜻이다. 가로 90.9㎝, 세로 72.7㎝ 크기의 캔버스 35개가 전시장 벽면에 가득 채워졌다. 전시장 한구석이 손 모양의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작가가 손의 세밀한 부분들이 자연과 흡사하다고 판단한 뒤로 제작해온 결과물이라고 한다.

▲ 옥정호 작 '머리로 서기자세 - 사람바 시르아사나(2011)'.
▲ 옥정호 작 '머리로 서기자세 - 사람바 시르아사나(2011)'.

바로 그 맞은편 벽면엔 정장을 입고 갯벌에서 나뒹굴어 진흙 범벅이 된 채로 앉아있는 남성이 보인다.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사진과 영상작업을 하는 옥정호 작가다. 갯벌 바닥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는 사진 속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 범벅인 채로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을 꿇고 갯벌에 앉아 쉬기도 한다. 자세가 괴이해서 눈길이 가는 사진물이다.

3층 전시실에선 중국 윈난성 쿤밍 출신의 장 샤오강 작가가 만든 2007년 작 '천안문'을 만나볼 수 있다. 천안문 광장의 모습을 각기 다른 색으로 찍어낸 석판화 7점이 걸려있다. 빨간색과 노란색, 초록색 등 7가지 색감 안료로 천안문을 그려냈다. 그중에서 붉은색 실선으로 빚어낸 천안문은 슬픔과 상처를 암시한다고 한다.

▲ 조덕현 작 'musician 3(2013)'
▲ 조덕현 작 'musician 3(2013)' /최석환 기자

통영 출신 윤이상 음악가의 1950년대 결혼사진을 재현해낸 작품도 그 주변에 나와 있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조덕현 작가가 지난 2013년에 만든 작품 'musician 3'이다. 회화 속 드레스가 액자 밖으로 나와 바닥까지 흘러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로 160㎝, 세로 260㎝ 크기 그림에 목탄으로 드로잉한 뒤 광목천을 이용해 제작한 드레스를 화면 밖에서도 보여준다. 그림을 완성한 뒤에 따로 드레스를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제작 초기부터 드레스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려 작품을 완성했다.

신소장품전은 도립미술관이 지난 2017년부터 수집해온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은 60점, 소장품전이 열리게 된 건 이번이 4년 만이다.

경남도립미술관 박현희 학예사는 "도비로 사들인 신소장품을 도민에게 알리고 공유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51년부터 2019년까지 60여 년에 걸쳐진 작품들이 나왔다"며 "동시대 현대미술과 근대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수집해왔다. 56~58% 정도가 경남 출신 작가들의 작품인데, 작품에서 나타나는 당대 삶이나 정신, 흔적 등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도 살펴보고 내 삶과 주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6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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