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어른 채현국 선생께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선생께선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며 미래 세대에게 영원한 자유인으로서 삶의 푯대를 남기셨다. 한때 열 손가락에 드는 거부였으나 재물은 세상의 것이라며 소유한 것이 없이 다 나눠준 분, 민주화운동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으나 자신의 몫을 했을 뿐이라는 겸손이 몸에 배어있던 분이었다. 선생께선 청년들이 닮지 않도록 노인세대의 잘못을 꾸짖어야 한다며 호통쳤고, 젊은 후배들에게 늘 배워야 한다며 존대를 했던 진정한 진보의 실천가였다. 성장을 멈춘 이는 꼰대요,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한 교육운동가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선생은 분명히 어른이었던 것이다.

워낙 세속적인 명성을 날리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기록을 남기는 것도 불편해하셨지만 이젠 선생의 삶을 돌아보며 어른의 말씀을 되새길 때다. 코로나19가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던진 충격파는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들추고 있다. 재물과 물질에 영혼을 빼앗겨 불안과 공포에 떨며 부동산과 주식투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결코 사람답지 않다.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돈 버는 재미에 빠지면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선생이 한창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사람' 키우는 교육에 매달린 이유다. 선생에게 학교는 학생과 선생을 '사람'으로 키우는 곳이었다.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했고, 자율성·자발성을 강조하며 학생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했다. 공부의 참뜻을 따지며 지식이 '잘못된 옳은 소리'의 오류와 편견에 빠질 수 있고, 권력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기도 했다.

선생이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평범하고 시시한 삶이 행복한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 경쟁에 속아 잘난 체하고 남을 딛고 올라서야 사는 거 같고, 시시하면 당하는 것 같지만, 시시한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에요. 조금이라도 남 짓밟으면 행복하지 못해요." 존경하는 어른의 육신은 떠났지만 삶의 궤적은 표상으로 남아 이제 우리의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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