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세계 초연곡 무대
이아름 작곡가 '빈'괴테상
직관적·내적 에너지 표현

3일 찾은 통영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열리고 있는 통영시 도남동 국제음악당 근처로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는 세차게 내렸다. 마치 윤이상의 눈물처럼.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 음악행사로 자리매김한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 윤이상에서 출발한다. 음악제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는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와 주한독일문화원 문화부장의 아이디어에서 발전해 2013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를 찾은 블랙박스 공연장 앞에는 유달리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 한결 자유롭고 궁금증으로 상기된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처럼 느껴졌던 비는 어느새 생명수처럼 느껴졌다.

◇음악을 생명처럼 여긴 윤이상 = 한국이 낳은 독일의 작곡가 윤이상. 그를 설명하는 저 단어에는 부끄럽고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17년 9월 17일생 당시 50세. 1967년 박정희 정권은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북한을 자주 드나들던 윤이상을 간첩으로 몰아 부인 이수자와 함께 체포했다.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죄수복을 입은 윤이상 선생의 당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작곡을 할 수 없던 그는 196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결국 음악을 만들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오페라 <나비의 꿈>을 썼다.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부인에게 건넨 끝에 독일에서 <나비의 미망인>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됐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유럽 음악인 200명의 탄원서와 항의로 마침내 석방됐다. 1995년 독일서 죽을 때까지 선생은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독일문화원은 1955년부터 매년 괴테 메달을 수여했는데, 독일에 귀화해 음악활동을 펼쳤던 윤이상은 1995년 이 상을 받기도 했다.

▲ 통영국제음악제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 중 괴테상을 받은 이아름 작곡가의 '빈'이 연주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 통영국제음악제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 중 괴테상을 받은 이아름 작곡가의 '빈'이 연주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아시아 젊은 작곡가 발굴 세계무대 발판 = 윤이상을 통해 맺은 독일과 한국의 인연은 음악제를 통해 지속해왔다. 주한독일문화원과 통영국제음악재단이 8회째 개최한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에는 지금까지 167곡이 울려 퍼졌다.

올해 공개 모집에 응모한 60곡 중 5곡을 선정했다. 이날 쇼케이스에는 김은성, 올리 잔, 정헌주, 김지현, 이아름 작곡가의 곡 순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모두 아시아·세계초연 곡으로 5명의 국제 심사위원들이 현장에서 가장 뛰어난 곡을 뽑아 괴테상을 수여했다. 그 결과 이아름 작곡가의 '빈'이 선정됐다.

"비운다는 것은 이미 무언가 존재했다는 것이며, 비워낼수록 모순적이게도 비움 고유의 에너지는 더욱 증가하게 된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이아름은 일상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조명해 직관적이고 종교적인 해석을 통해 음악의 내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작곡가이다. 세계무대로 훨훨 날아갈 그를 응원한다.

◇일상·소통·염원 담은 통영 =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입으로 소리 내는 관악기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가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지휘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몸짓은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듯이 닿았다.

이날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환영사를 한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장인 강석주 통영시장의 말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지난해 취소했던 음악제를 올해 개최할 것인가를 놓고 고뇌의 시간을 거쳤다고. 현대음악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듯이 끝없이 도전하는 예술인들에게 관객들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주제인 '변화하는 현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낸 어제의 윤이상과 오늘의 젊은 작곡가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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