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극기지 대원 8명 이야기
진수성찬에도 간절한 건 '라면'
극한 속 면 직접 뽑아 끝내 완성
일상의 소중함 다시금 일깨워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하는 방송)'으로 힐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상을 보는 순간 잡생각이 사라지고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된다. 아마 먹방, 쿡방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게다.

<남극의 셰프>는 1년여 동안 남극 돔 후지 기지에서 살아가는 대원 8명의 이야기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주인공은 대원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조리 담당 대원 '니시무라 준'이다. 니시무라는 실제 남극기지에서 일한 인물로 영화는 그가 펴낸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19세기 초 대표 미식가였던 프랑스의 장 앙텔므 브리아 사바랭은 "먹는 즐거움은 하나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행위로부터 오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 오랜 시간 머무는 요즘 '먹는 즐거움'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 크다.

▲ 영화 속 남극기지 대원 8명./스틸컷
▲ 영화 속 남극기지 대원 8명. /스틸컷

영화 속 남극기지에 사는 대원들도 마찬가지. 니시무라가 해주는 요리는 대원들에게 고향의 맛이자 삶의 낙이요, 위안이자 오늘을 버티는 힘이 돼준다.

먼저 남극 돔 후지 기지가 어떤 곳인가 하면 평균 기온 영하 54도, 고도는 후지산보다 높은 약 3800m, 펭귄이나 바다표범은커녕 바이러스도 못 사는 극한지다. 기압은 일본보다 60% 정도 낮아서 뭘 해도 숨이 차다.

요리사에게도 남극은 만만찮은 곳이다. 식재료는 모두 냉동, 건조, 캔이 기본. 기압이 낮아 약간 낮은 온도인 85도에서 물이 끓는다. 니시무라는 채소 재배가 될까 해서 여러 종류의 씨앗을 가져왔지만, 싹이 난 건 무순과 콩나물이 전부다. 악조건 속에서도 주인공은 요리를 척척 한다.

음식 영화답게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

홋카이도산 연어알을 넣은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 닭새우 튀김,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 테린, 생선을 팬에 굽는 푸알레 방식으로 조리한 농어, 대게 요리, 중국 요리, 면 위에 부드러운 차슈(돼지고기 고명)가 올려진 일본식 라면 등이다.

니시무라 역을 맡은 사카이 마사토는 일본 대표 연기파 배우다. 와세다대학 시절 '와세다의 왕자'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는 영화 속에서 대원들의 엄마 같은 역할을 잘 해낸다. 그의 연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는 건 음식. 영화 <카모메 식당>, <안경>, <심야식당> 등에 참여한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가 음식감독을 맡았다.

▲ 닭새우 튀김./스틸컷
▲ 닭새우 튀김. /스틸컷

여러 음식 중 관객에게 웃음을, 대원들에게 무안함을 선물한 건 닭새우 튀김이다.

한 날 닭새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대원들은 "오늘 저녁은 새우튀김이네"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니시무라는 "튀김으로 하기에는 너무 크다"며 "보통은 회로 먹는다"고 말하지만 대원들은 무조건 "새우튀김"이라고 노래를 부른다. 결국 니시무라는 대원들의 등쌀에 못 이겨 닭새우 튀김을 만들었고 대원들은 거대한 새우튀김을 맛보고 "역시 회였어", "회가 정답이야"라며 고개를 젓는다.

가장 찡했던 장면은 니시무라가 직접 면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대접한 라면.

대장은 헛헛한 마음을 라면으로 달래며 지내는데 라면이 떨어지자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한다. 급기야 한밤중 니시무라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내 몸은 말이야 라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라면을 못 먹게 되면 난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지? 면이랑 국물만 있으면 돼. 차슈는 필요 없어."

니시무라는 간수가 없어 면을 못 만든다고 했지만 "탄산나트륨, 소금을 넣으면 간수와 흡사하지 않을까"라는 대원의 말을 듣고 직접 면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라면을 대접한다.

대장은 "엄청난 오로라가 보인다"며 관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원의 말에 "오로라? 지금 그게 문제야?"라며 라면을 맛있게 먹는다.

▲ 주인공 니시무라가 연구소 대장의 “라멘이 먹고 싶다”는 부탁에 직접 면을 만들어 라멘을 대접한다. /스틸컷 <br /><br />
▲ 주인공 니시무라가 연구소 대장의 “라멘이 먹고 싶다”는 부탁에 직접 면을 만들어 라멘을 대접한다. /스틸컷

우리는 때론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코로나19 이전 누렸던 일상이 코로나19 이후 '소중했구나'라고 뒤늦게 안 것처럼 <남극의 셰프>는 거대한 서사는 없지만, 일상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당연한 듯 물을 쓰고 당연한 듯 외출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정말 내가 남극에 가기는 했던 건가."(일본에 돌아온 니시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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