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한반도를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로 여기고 지배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계속되자 이를 저지하고자 무장자위대 봉기가 시작된 날을 가리킨다.

제주 4·3 사건 제73주년을 앞두고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이들에 대한 기림과 피해자와 가해자 간 화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당대 사정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지만, 공적인 공간에 세워진 동상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관찰하고, 암묵적으로 학습하는 공간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재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3 사건 당시 제주도민의 학살을 주도한 군인과 학살을 모면하고 동족의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한 군인의 대우가 상식과 다르다면 마땅히 역사공동체 평가에 따라 수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4·3 사건의 진압군이었던 9연대(이후 11연대) 지휘관들이 하동과 남해 출신이었다. 동족살상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군인은 흔적도 없고, 동족 학살을 지휘한 인물은 역사적 기림을 받는다면, 민족의 역사는 말살되고 만다.

당시 상황을 구구하게 지정학적 요인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다만 한 가지, 대한민국 군대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인가, 아니면 살상하고 파괴하는 것이 임무인가로만 평가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73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민족 역사의 이름으로 진상을 인정하고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가해자도 피해자도 거의 사라지고 없는 시점, 다만 후손들이 조상을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는 시점에 역사에 대한 공유, 화해가 어려운 이유는 점차 희박해져 가고 있다.

다만 정치, 이해관계가 있는 조직과 언론이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이다. 20년 전에도 화해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해소되지 못했다. 언제까지 역사의 해석과 민족 정기를 찾는 일이 지난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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