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학대 현장조사 잦아도
초과근무 월 15시간만 인정
사례자 폭언·폭행에 늘 긴장
큰 사건 발생할까 두려움도

"현실적 대안이 없으니 일한 것만이라도 제대로 받았으면 하는 거죠.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같이 현장조사하고, 연장선에 있는 일을 하는데 (처우가 다른 걸 볼 때) 느끼는 게 많죠."

일반 회사원이라면 퇴근 준비를 할 시간인 평일 오후 5시 30분께.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상담원 오재영(가명·25) 씨와 박해웅(가명·29) 씨는 현장조사 출동 준비로 분주하다. 전날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와 전담공무원이 동행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출동하는 이들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 = 평소 아동복지에 관심 있던 오 씨는 지난해 입사한 경력 6개월 새내기 상담원이다. 오전 9시 출근해 아침회의에서 2~3건 사례회의를 한다.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1시간가량 업무를 보면 어느덧 낮 12시다. 오후에는 사례관리 업무를 하거나 현장조사를 나가는데, 주로 하교 전 안전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아동들을 만나러 간다. 현장조사 동행이든 사례조사든 부모 상담은 대개 퇴근시간 이후인 오후 6시부터 진행한다. 퇴근시간 즈음 출동하면 사무실로 복귀하는 시간이 오후 8~9시, 늦을 때는 오후 10시 넘어서 도착하기도 한다.

오 씨는 "사무실로 돌아오면 업무일지 등 기본적인 것만 정리하는 데 최소 30분이 걸리고, 다녀온 사례와 조사한 내용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하고 다음 날 회의 준비까지 하려면 3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며 "오늘도 새벽 1시 반에 잠들어 3시간만 자고 일어나 회의 때 소개할 내용을 정리하고 출근했다"고 전했다.

늦게 퇴근했다고 늦게 출근하지는 않는다. 팀장이나 관장이 배려해준다 해도 그만큼 일이 밀리는 것이어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주기가 일주일에 2~3번 반복된다.

◇살얼음판 = 상담원들은 일을 하면서도 긴장의 연속이다. 통영·밀양·창녕 등 장거리 운전을 할 일도 많고,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어 늘 조심스럽다. 진술을 들으면서도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파악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가정 파괴범 취급을 받고, 욕설을 듣는 일도 허다하다. 흥분한 채 사무실로 찾아오는 행위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상담원 몫이다.

오 씨는 "하루는 주말 당직을 서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아동학대 행위자가 엄청난 폭언과 욕설을 쏟아내더니 스스로 죽겠다고 하더라. 전날 야근하고 지쳐 있던 날이었는데 너무 속상해서 그날 좀 울었다"고 말했다.

업무 중에 발생한 일로 법적 분쟁이 일어나도 상담원 개인이 감내해야 한다.

평일은 물론 주말이라도 언제 자신이 관리하는 가정에서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안심할 수 없다. 현장출동 동행은 순번을 바꾼다 해도 자신이 맡은 사례관리 가정은 다른 상담원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사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아픔을 다시 꺼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진 = 월 15시간 초과근무를 하면 수당이 나오지만 업무가 많아 보통 일주일이면 모두 바닥난다. 올해 아보전 상담사 4년 차인 박해웅 씨는 일하는 동기를 일깨울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만약 첫주에 '시간 외 수당'을 모두 받으면 남은 3주는 무급으로 일하는 격이다. 상담원들도 사람이라 무급이라고 생각하면 뒷일은 하기가 싫어진다"며 "2시간 더 일하고도 1시간만 일하는 식으로 시간 외 근무 시간을 적게 기록한다"고 말했다.

밤낮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담원들이지만 사례자들을 만날 때도 미안한 마음이다. 박 씨는 "사명감으로 맡은 가정의 문제를 정말 잘 해결해주고 싶은데 스스로 소진되다 보니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상담하면서도 내가 굉장히 지쳐 있는 걸 느낄 때가 있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가끔 아보전에 신고된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해 비판을 받을 때는 남 일 같지 않아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고 했다. 박 씨는 "그 상담원이 왜 그랬을까 아쉬운 생각도 들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않아 감사하기도 하다"며 "거울삼아 내 사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무서움이 밀려오기도 한다"고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이들이 전담공무원과 2시간가량 현장조사를 마친 뒤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30분께. 출발할 때보다 많이 지쳐 보이는 이들에게 다음 일정을 물었더니 저녁밥을 사러 간다고 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보전 주차장에는 아직 주차면 세 면이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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