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 강경진압 주도
남해 동상 이어 처리 두고 논란
시민사회 "범죄 두둔하는 꼴"
시·전몰군경유족회 대응 고심

제주 4·3항쟁 때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동상 처리 문제가 대두한 가운데 창원시도 관련 논란에서 마냥 자유롭지는 않다. 창원시 의창구 삼동동에 있는 창원 충혼탑에 박 대령 위패가 안치돼 있는 까닭이다.

2017년 지역에서는 박 대령 위패가 '경남 대표 위패'로 줄곧 세워져 있었다는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매년 경남도와 창원시는 창원 충혼탑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치렀는데, 참석자들이 헌화·분향을 하는 곳에 '경남도 대표 박진경(1920~1948) 육군 대령 신위'라고 적힌 위패가 늘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해 62회 현충일 추념식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당시 경남도와 창원시·전몰군경유족회 경남지부는 '역사적 사실을 몰라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들은 "1985년 창원 충혼탑이 준공되면서 부산에 있던 위패를 옮겨왔는데, 이 가운데 박 대령이 가장 계급이 높아 대표 위패로 세웠다"고 설명했다.

단, 이듬해 추념식에서부터 박 대령 위패가 경남 대표로 서는 일은 없었다. 이유희 전몰군경유족회 경남지부 창원지회장은 "63회 현충일 추념식부터는 빈 위패에 '호국영령 신위님'을 새겨 대표 위패로 세웠다"며 "경남 대표 위패를 비치하지 않는 것인데, 이후 줄곧 이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대표 위패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남해에서 박 대령 동상 이전 문제가 재차 불거지면서 '박 대령 위패를 충혼탑에 두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만 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운동본부 전 상임의장은 "민간인 학살은 민족의 범죄자나 마찬가지다"며 "위패는 당연히 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전쟁에서 세운 공이 있다고 하여, 민간인 학살 주도자를 충혼탑에 안치하고 헌화하는 것은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두둔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공이 있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가 남긴 잘못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밝혀 잘못된 인식과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창원시 의창구 삼동동에 있는 충혼탑. /창원시
창원시 의창구 삼동동에 있는 충혼탑. /창원시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비상임연구원은 "박 대령은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전쟁에서 공을 세웠고 충혼탑에 안치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을 학살했다는 잘못도 명확하다. 이런 인물이 충혼탑에 안치돼 있다면 그를 향한 추모는 흠결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대령 위패 안치 여부를 결정하는 창원시와 전몰군경유족회 경남지부 창원지회(이하 창원지회)는 신중한 태도다.

창원시는 "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유족회와 협의를 거치고 국가유공자를 총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와도 논의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창원지회 역시 "박 대령 동상·추모비 이전 등과 관련해서는 여러 시각이 교차한다. 창원이 먼저 나서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며 "전국 각 지자체 등이 동시에 결정하든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그의 비석을 먼저 철거하는 등 최소한 위에서부터 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창원과 달리 제주도는 충혼묘지 앞 박 대령 추모비를 이전하기로 했다.

박 대령 추모비 이전·철거를 주장해온 강철남(더불어민주당·제주 연동을) 제주도의원은 "박 대령은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폭동사건을 진압하려면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말을 남긴 인물이다. 이런 사람의 추모비가 충혼묘지에 있는 것"이라며 "현 충혼묘지를 포함한 제주 국립묘지가 조성되는 것에 맞춰 박 대령 추모비 이전을 결정했다. 올해 추모비가 이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는 충혼탑에 안치된 주요 인물 전수조사 필요성과 잘못을 명확하게 밝힌 다른 기념물을 세워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두고 창원시와 창원지회는 전수조사 필요성에 일부 공감하며 국가보훈처 등 정부 차원에서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견에 김 전 의장은 "위패를 빼는 것 자체로 반면교사가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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