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지 배우
5년간 회사일 접고 시작한 연기 1년도 안 돼 회사 인턴 역 낙점
공대 출신, 수학 문제는 풀어도 연기는 늘 행복하지만 어려워
박진수 배우
연기 경력 30년 '통영의 송강호'
지역서 촬영하는 드라마 반가워 젊은 지역배우 기회 더 많이 주어져야

오는 6월 첫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에 경남지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지난달 치러진 오디션에서는 총 15명의 배우가 뽑혔고 도내 250여 명이 지원해 17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번 드라마에 경남 출신이거나 경남에서 활동 중인 배우가 뽑히게 된 데는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제작비 일부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15명 중 도내에서 활동 중인 이혜지, 박진수 배우를 만나보았다.

▲ 이혜지 배우. /김민지 기자
▲ 이혜지 배우. /김민지 기자

◇평범한 직장인서 배우로 = 이혜지(30) 씨는 대기업 연구원에서 배우로 전향했다. 이 씨는 지난해 4월 직장을 그만두고 창원지역 극단 나비 단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2019년 창원 가로수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창원시민 연극아카데미'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봤다. 당시 심심하던 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연극을 배울 수 있다는 소식에 지원을 했다. 4개월가량 연극을 배운 뒤 작품 <가을소나타> 일부분을 20분 정도 공연했는데 여운이 오래갔다."

이 씨는 극단 나비 김동원 대표에게 "이런 활동을 더 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고 김 대표는 한참을 생각한 뒤 조심스럽게 단원 생활을 권유했다. 처음엔 직장에 다니면서 연기를 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사일과 멀어지고 연극에 빠진 자신을 발견했다. 이 씨는 5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접었다.

배우는 많은 이의 주목을 받는 직업이고 뒤늦게 시작한 일이라 어려움이 더 컸을 것 같다는 질문에 이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 설 때 행복하지만 할수록 어렵다"고 말했다. 공대 출신인 그는 "수학문제나 과학문제는 내가 고민하고 풀면 답이 나오지만 연기는 여태까지 삶의 방식이랑 다르다"며 "답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인터뷰 내내 웃음과 열정을 뿜어낸 이 씨는 스스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제39회 경상남도연극제에 배우로 섰고 생애 첫 드라마 오디션을 보았다. 김 대표가 단원들에게 오디션 소식을 알렸고 다 같이 지원을 했지만 이 씨만 합격했다.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1차 서류에 붙고 2차 오디션을 준비할 때 단원들이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이것저것 가르쳐주었다. 촬영하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안 줬으면 좋겠고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소중하다."

이달 중순 'MBC <미치지 않고서야>, 경남·창원 지역 연기자 1차 15명 주요 배역 출연 확정'이라는 기사가 나간 뒤 이 씨는 여기저기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다들 "기적이다"며 그를 응원했고 부모님도 "열심히 잘 해봐라"고 토닥였다.

"지난해 삶의 방향을 확 꺾은 뒤 막막하면서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배우를 시작했는데 1년도 안 되어서 큰 변화가 왔다. 4월 10일 첫 촬영인데 대사는 없지만 이번 기회에 많이 듣고 보고 하겠다."

이 씨는 개발2팀 인턴 김혜지 역을 맡고 실제 회사원 출신이라서 드라마 자문도 맡는다.

▲ 박진수 배우./김민지 기자
▲ 박진수 배우./김민지 기자

◇연기가 곧 내 삶 = 이 씨가 새내기 배우라면 박진수(50) 씨는 베테랑 배우다. 창원전문대 극예술연구회, 창원예술극단 출신으로 연기 경력만 해도 약 30년이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통영오광대 전수생으로 통영에서 살고 있다.

박 씨가 연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산중부경찰서 맞은편 세림상가 3층 소극장에서 본 극단 마산의 <아일랜드> 때문이다.

"당시 친구가 연극영화과 지망생이어서 함께 연극을 보러 갔었다. 김태성, 전영도 배우의 2인극이었는데 두 분의 땀과 열정이 뿜어낸 수증기가 마치 오로라처럼 느껴졌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박 씨는 26살부터 6년간 창원예술극단에서 활동했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극단 생활을 했지만 그에겐 "행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솔직하게 거침없이 말하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보니 그는 유머러스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배우가 왜 좋냐고, 연기가 왜 좋냐고 묻는 말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입을 뗐다.

"솔직히 사회생활 하면서 다들 가면을 하나쯤 쓰고 있지 않나. 나에게 무대는 살면서 유일하게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통로다."

박 씨는 배우를, 연기를 포기하겠다는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타고난 놈'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데 갈 곳이 없었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난 무대라는 공간, 연극이라는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데 다른 곳의 호흡법은 익숙지 않아 숨 쉴 수가 없었다. 덜 배가 부르더라도 덜 갖추어입더라도 호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공간이 편하다."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창원예술극단을 나와 30대 초반에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어머니가 편찮아 창원으로 돌아왔다. 박 씨는 이번 드라마가 2009년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 2017년 MBC <병원선>에 이어 세 번째 출연이다. 그는 경영전략본부 서윤택 실장 역을 맡는다.

"이번 드라마가 지역 배우, 특히 젊은 배우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굳이 서울에 안 가도 지역에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콘텐츠와 매체가 풍성해지고 선배들도 후배를 위해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통영의 송강호'를 줄여 '통강호'라고 불리는 박 씨는 올해 드라마를 시작으로 경남도립극단 작품, 웹드라마 <좋좋소> 등에 출연해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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