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커밍아웃 가족은 지지
주변 시선에 일 구하기 어려워
의료적 트랜지션도 지역선 난관
성소수자 잇따른 죽음에 충격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나서야

오늘(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이해하고 알리는 날입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이날을 "트랜스젠더의 존엄성을 엄숙하게 돌아보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더해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자체를 기념하고자 2009년에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경남에도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MTF(Male To Female·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나 성정체성이 여성인 경우) 트랜스젠더인 주시연(활동명·22) 씨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지난 29일 오후 시연 씨를 만났습니다.

▲ 주시연 씨.  /주시연
▲ 주시연 씨. /주시연

◇태권도에 빠졌던 이유

시연 씨는 9살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처음에는 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다.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다. 꾸준히 도장에 나간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즈음에는 4단까지 땄다. 이후에 다소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지금도 도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만 22세 이상이면 태권도 사범 자격을 취득할 수 있어 내년부터는 여기에 도전할 생각이다.

시연 씨가 태권도에 빠졌던 시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때였다. 스트레스가 많았기에 도장을 자주 가게 됐다. "운동하다 보면 목표가 있으니 이것부터 끝내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는 경우가 잦았다. 밤낮없이 도장에 있으면서 어지러운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8시간은 기본, 길게는 12시간씩 거의 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연 씨는 지정된 성별에 거부감이 들었고, 다른 성별이 되고 싶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저 자신을 부정하려고 해봤죠. 그런데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오히려 인정할 수 없더라고요. 저만 아프고, 괴롭고."

◇"성별 따위 중요치 않아"

시연 씨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남자 고등학교에 가기는 어려웠다. 진학이나 진로는 "성별과 상관없이 최대한 제가 티가 안 나는 곳"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남녀공학이면서 돈을 벌 수 있고 빨리 취업해 나올 수 있는 곳을 골랐죠." 그래서 시연 씨는 조리 전문 고교에 다녔고, 대학에서도 제과·제빵을 전공했다.

힘든 시기였으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스로 확신이 섰다. 학창시절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정당 당원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부모모임과 같은 단체도 알게 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트랜지션(Transition·출생 때 지정된 성별의 외모, 신체특징, 성역할 등을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알게 됐다. 고교에 입학하던 그해 2월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담임교사에 이어 주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Coming Out·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했다. 담임교사와 여자 친구들은 "성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너는 너다"라고 보듬어줬다. 하지만 남자인 친구들이 비웃거나 괴롭히는 일도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여자 친구들 틈에서 괴롭히는 애들을 피해 다닌" 고교 시절이었다.

그해 9∼10월에는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나서 가족과 연이 끊긴 성소수자의 사연이 많다. 반면 시연 씨 가족은 시연 씨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지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시연 씨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서 나고 자랐다. 이곳을 떠나 산 적이 없다. 그러나 지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란 벅찬 현실이다. 의료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시연 씨는 2주에 한 차례 부산까지 가서 호르몬제 처방을 받고 있다. "국가 지원은 당연히 안 되고, 병원 10곳 중 5∼6곳은 호르몬 치료나 혈액 검사를 거부해요. 창원에 있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산이나 서울로 가야 하는 상황이고요."

창원에서는 처방해주는 병원을 찾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진료를 해준다고 해도 일부분에 그치고 진료비는 부산이나 서울보다 3∼5배 더 비싼 편이다. "지역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 치료를 포기하거나 주변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포기하는 사례도 있어요."

정신과 진단·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과 같은 의료적 트랜지션의 중요성은 학계에서도 언급된다. 2018년 한국역학회지 에 실린 논문 '한국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트랜지션 관련 경험과 장벽: 정신과 진단, 호르몬 요법, 성전환 수술을 중심으로'는 이 같은 의료 과정을 두고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공적 신분서류에 기재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적 요건이자 사회적 차별로부터 본인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며, 화장실과 같이 남녀 성별을 기준으로 분리된 공공시설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물류센터 노동자

시연 씨는 차승원 주연의 <하이힐>을 '인생 영화'로 꼽는다. 화려한 액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고 꿈꾸기도 했다. 태권도 특기를 살려 경호업체 지원도 생각해봤는데,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포기한 적도 있다.

현재 시연 씨는 일주일 넘게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숨고, 숨고, 숨다 보니" 다다른 곳이 전공과는 거리가 먼 물류센터였다. 고교 때부터 지난달 대학 졸업까지 경남·부산·서울에 있는 50곳 정도에 이력서를 써냈다. 몇 차례 채용되기도 했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함께 일하던 이들이 시연 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력서를 내밀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느껴지죠. 그리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근육량이 줄어드는데, 제가 일했던 곳에서 그걸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일을 못한다고 얘기하거나 남자애가 힘이 없다고 하니까…."

업무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 일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지금 물류센터는 "오전에 2시간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하고 오후 시간도 활용할 수 있어" 괜찮은 편이다.

◇그들이 남긴 것

변희수 전 육군 하사,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 이은용 극작가 등 세상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해온 이들이 최근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은 1월부터 3월까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 시기를 '피의 봄'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처럼 한 달에 한 명씩 소식을 듣는 건 처음 겪어보는 일이에요. 트랜스젠더인 또래 친구 10명 가운데 4명은 일단 신체적 거부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경험했다고 해요. 당사자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시도 안 해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죠."

근래 소식들은 시연 씨에게도 고민을 던졌다. '생존'에 관한 고민이다. "저희가 생존조차 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여러 사람이 돌아가시고 충격을 받은 상태죠. 하지만 그것을 딛고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 제정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는 변희수 하사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 그런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변 하사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

-신분증·법적 성별 정정과 관련된 차별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에서의 차별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부재와 이로 인한 고용, 교육 등에서의 차별
-시설 이용과 재화·용역 이용에서의 차별
-군대·형사사법·행정 등 국가기관에서의 차별
-방송·신문 등 언론, 드라마·영화 등 영상매체, 그리고 인터넷에서 전파되는 트랜스젠더 혐오표현
-가족과 파트너 등 일상적인 관계에서 정체성을 거부당하거나 이를 이유로 한 괴롭힘·폭력 등 혐오차별
-성별·인종·장애 등 다양한 정체성에 따른 복합차별

<자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인권위,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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