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카 전시회 계기로 돌에 그림 그려
"그림 그릴 때는 허리 아픈 것도 잊고 집중"

"코로나19로 나다니지를 못하는데, 돌에 그림을 그리면서 힘듦과 어려움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함양군 지곡면 대밭마을에 가면 하천이나 산, 농촌 길에 널린 돌을 화폭 삼아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가 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2008년 고향인 함양군 지곡면으로 귀촌한 정소혜(79) 할머니다.

정 할머니는 초등학교는 지곡면에서 다녔지만 중·고·대학은 모두 서울에서 졸업했다.

현재 지곡면 농협 건물이 어릴 적 살던 집이었으나 본가였던 곳과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곳에 대학 동창과 함께 똑같은 집 2채를 지어 귀촌했다.

"남편이 산도 좋아하고 땅도 있어 귀촌했다"라고 밝히는 정 할머니는 "처음에는 고향으로 왔는데도 적응이 안 돼 어려움이 많았다. 연고가 없는 도시인들이 귀촌과 귀농을 하면 많이 힘들겠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민화를 그리는 조카가 책을 내고 전시회를 하는 것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평소 돌을 좋아해 하천이나 산에 가면 작은 돌을 곧장 주워 오는 취미가 있었던 할머니는 돌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다는 것.

처음에는 조카에게 도움을 요청해 전시회를 보고 온 그날인 지난해 3월 13일 소나무에 까치가 있는 그림을 처음으로 돌에 그렸다. 이제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정 할머니가 그린 작품이 무려 400점이 넘을 정도다.

▲ 2008년 고향인 함양군 지곡면으로 귀촌한 정소혜 할머니는 지난해 3월부터 돌에 그림을 그렸다. 1년 동안 4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린 할머니의 집 곳곳에는 돌 그림으로 가득차 있다. 정소혜 할머니가 돌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동춘 기자
▲ 2008년 고향인 함양군 지곡면으로 귀촌한 정소혜 할머니는 지난해 3월부터 돌에 그림을 그렸다. 1년 동안 4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린 할머니의 집 곳곳에는 돌 그림으로 가득차 있다. 정소혜 할머니가 돌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동춘 기자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1년 동안 매일 하나 이상 돌에 그림을 그렸다. 코로나19 때문에 평소 좋아하는 여행도 가지 못하는 등 나다니지 못한 것이 할머니를 돌 그림 세계에 빠져 들게 했다.

정 할머니는 "돌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코로나로 말미암아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명품관에 쇼핑 가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했다.

정 할머니는 대부분 기존 작가 그림을 보고 그리거나 지인들이 보내준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그린다.

정 할머니는 "이제 어디를 가든 돌부터 보게 된다. 돌 모양에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돌을 선택하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촉'이 오는 것 같다"며 "표면이 거친 돌은 표현이 힘든 면이 있다. 인물화를 그리는 것이 제일 힘들다"라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이 전시회도 권유하고 있지만 지금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집 곳곳에 돌 그림을 보관하고 있어 집 자체가 전시장 못지않다.

허리가 좋지 않아 고생하고 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허리 아픔도 잊는다는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돌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따라하면 정말 기쁘겠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 중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을 가장 소중히 아낀다는 할머니는 앞으로 하나라도 더 좋은 작품을 그리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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