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가치 높이려면 인문학 살아있어야
지역화폐 독립운동가 새긴 창원의 품격

미국 달러에는 조지 워싱턴이 있고, 중국 위안에는 마오쩌둥이 있다. 베트남 지폐에는 호찌민이 있고 인도 지폐 루피에는 간디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화폐에는 유관순도 없고 백범 김구도 없다. 독립 운동가들의 초상이 그려진 전 세계 각국의 화폐와는 달리 우리나라 화폐에서는 독립 운동가를 찾을 수 없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대부분 나라가 화폐에 독립 운동가를 새겨 넣고 그 정신을 기렸음에도 우리나라는 예외다.

35년 일제강점기를 극복한 전 세계 유례 없는 위대한 독립운동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그럼에도 우리 화폐에 독립운동가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실패하면서 친일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결과이다. 해방만 되었을 뿐 여전히 사회기득권을 누린 친일세력들이 독립운동가가 새겨진 화폐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화폐뿐이랴. 친일파가 만든 애국가, 친일파가 묻힌 현충원, 심지어 현재 사용되고 있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초상들이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문제까지 제기될 정도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역사는 지금 우리 곁에 버젓이 살아있다.

주기철, 이교재, 명도석, 김진훈, 배중세. 이 다섯 명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라는 것과 창원사랑상품권 누비전에 새겨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일제의 신사참배운동에 저항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 3·1운동을 주도하고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활동했던 이교재, 조선독립당을 조직한 김진훈, 마산노동야학을 운영하며 항일정신 계몽활동을 펼치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마산시위원장이었던 명도석, 밀양 사람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활동으로 항일무력투쟁을 했던 배중세.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다섯 명의 독립운동 위인들이 창원사랑상품권 누비전에 새겨져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지역화폐에 지역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새겨 넣은 것이라고 하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많다. 첨단기술의 화려함을 뽐내며 높은 건물을 세울 수도 있고, 대규모 스포츠시설과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여가생활을 보장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인문학이 살아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은 먼 학문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위해 필요한 생각이자 사고이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시험이나 승진에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이다. '나는 무엇인가?' '죽음이 왜 두려운가?' '타인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잔잔한 보리밭에 부는 바람처럼 문득 평범한 일상을 뒤흔드는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인문학은 절실하다. 인문학의 기본은 역사이다. 어제의 사람을 통해 오늘 우리가 살아갈 삶을 생각하는 것. 그래서 독립운동가 5인이 새겨진 창원사랑상품권 누비전이 반갑다.

역사는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교과서에서만 읊어서도, 박물관에 가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소소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역사를 생각할 때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미래 비전이 될 수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의열단 배중세의 용맹함을 생각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 독립운동가 명도석 선생의 삶을 생각하는 일상이 창원시에서는 가능하다. 마트에서 시장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시민들의 일상에 지역화폐가 있는 한 시민 곁에 독립운동도 함께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생각하는 일상의 연속. 우리 역사의 주류는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정신이 되어야함을 느끼게 하는 나의 도시 창원. 우리 곁에 독립운동이 있는 창원의 품격은 그래서 그 어느 도시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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