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욱 개인전 내달 7일까지
진해구 루블갤러리앤커피

"갤러리 벽면이 하나 비었어요. 퍼포먼스 식으로 전시 기간 중 빈 벽에 채워 넣을 그림을 작업하고 있었어요."

서울 구로에 있는 게임회사에서 15년째 게임 콘셉트 디자이너로 재직 중인 하재욱(46) 작가가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이렇게 말했다. 100호짜리 합판에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지난 27일 오후 4시께 창원 진해구 태백동 루블갤러리앤커피에서 만난 작가는 "지금까지 조그마한 스케치북에만 작업을 해왔었다"며 "생애 처음으로 가장 큰 작업에 도전해봤다"고 설명했다. 화면엔 커다란 벚꽃 나무와 그 옆에 놓인 자전거, 나무 주변을 지나는 자동차가 그려졌다.

▲ 게임회사 디자이너로 재직 중인 하재욱 작가와 그의 작품들.  /최석환 기자
▲ 게임회사 디자이너로 재직 중인 하재욱 작가와 그의 작품들. /최석환 기자

하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내가 스마트폰에 담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그가 이날 진해에 내려온 건 지난 24일부터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때문이다. 작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퇴근길에 오를 때마다 틈틈이 그려온 작품들을 진해 루블갤러리앤커피 지하1층 전시장에 내놨다. 개인전 이름은 '꽃날'이다. 이번이 생애 2번째 전시다.

그는 진주 출신으로 모나미 볼펜과 4B연필, 색연필을 사용해 작업해온 작가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하루 4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본 장면들을 작은 스케치북에 담아왔다.

그날마다 눈여겨 봤던 상황을 그림 속에 표현하거나 당시 상황에 관한 남다른 감정을 글로 적어 작품 옆에 붙여놓는 작업도 해왔다.

"그림만으로는 감정을 모두 표현하기 어렵다. 나의 감정을 다 표현하려면 그림과 글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그림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두 가지를 같이 써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봄기운이 물씬 나는 벚꽃 그림과 제주도의 바다 풍경, 오늘 하루라는 주제의 작업 등을 내놨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은 150여 점이다.

대부분 색연필로 제작된 게 특징이다. 하 작가의 딸이 출근하지 말라며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있는 모습,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벚꽃 위를 지나는 장면 등도 액자에 담겨 개인전에 나왔다. 실제 있었던 일을 그려낸 그림인데,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아빠, 회사 가지마. 맨날 지루해.' '그래. 회사 안 갈게.' '고단한 나의 하루와 지루한 너의 하루를 어찌어찌 잘 붙이면 아주 먼 훗날 기억할만한 하루가 생길지도 몰라.'

작가는 전시장에 인물화도 내놓았다.

▲ 하재욱 작가의 작품.  /최석환 기자
▲ 하재욱 작가의 작품. /최석환 기자

그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작업은 아내 그림이다. 작가는 부드럽고 연약해질 수 있는 시간과 돈과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라는 글을 옆에 적어 놨다.

작가가 전시장에 내놓은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이 인물화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만한 지점이 생기게 될 거다. '이렇게 사소한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구나',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 부분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냥 놔두면 잊어버리고 말 텐데, 이렇게라도 일상을 기록해둔다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 점이 전시를 통해 전달되면 좋겠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문의 010-8503-0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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