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마을 돌보는 기초적인 안전망 역할
골목상권을 지켜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몇 걸음 옮기면 또 보이는 점포임대 표시. 닫힌 문 앞에 수개월 치 쌓인 우편물. 지금 골목상권은 시들어간다. 길어진 경기침체, 대기업의 압박, 코로나19까지 겹친 탓이다. 어렵게 시작한 장사를 접거나 기약 없는 휴업에 들어간 자영업자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감소한 자영업자 수는 7만 5000명. 3년 이내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살아남은 자영업자 수는 연평균 553만 1000명. 이 역시 1994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적은 수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최근 자영업은 창업 1년 이내 60%가, 3년 이내 70%가 문을 닫는다. 5년을 넘겨 버티는 경우는 10명 중 2명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방증인데,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영세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오죽하겠나. 자영업자 넷 중 한 명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실정이다. 자영업 대출 잔액도 급격히 늘어 빚으로 버티는 가게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는 우리 몸과 같은 유기체여서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게다가 자영업자 수는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5분의 1을 넘는다. 서민경제의 기반이자 핵심인 이들이 무너지면 내수시장이 얼어붙는다. 돈이 돌지 않는다는 말이다. 흔히 골목상권을 경제의 모세혈관이라고 한다. 모세혈관이 막히면 각종 질병을 낳고 결국 죽음에 가까워지듯 골목상권이 고사하면 국가 경제도 위태로워진다.

그럼에도, 경쟁력이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어서, 굳이 골목상권을 살려야 하는 이유에 공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제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자. 이들이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지켜주는 가장 기초적인 안전망이라면 어떤가.

이달 초 전북 전주에서는 상점 주인의 신고로 위기에 처한 중년여성의 생명을 구한 일이 있었다. 한 손님이 번개탄과 소주를 사서 나간 뒤 주인은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다며 경찰에 연락해 차량번호를 알려줬고 나쁜 마음을 먹은 채 정처 없이 도로를 달리고 있던 중년의 손님은 경찰의 설득에 무사히 가족에게 돌아갔다. 가게를 운영한 20년간 수많은 사람을 보아온 주인이 손님의 행동 하나를 무심히 넘기지 않은 덕이다. 보통의 집 앞 슈퍼 사장님, 그 옆 세탁소 아저씨, 건너편 분식점 아줌마와 문방구 할아버지가 그러하듯 말이다.

동네 주민들의 사정을 알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하며 낯선 이들을 금방 알아채는 그들은, 그래서 자연스레 마을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된다. 복지·안전 정책이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언제나 남기 마련이고, 그곳에서 스스로 이웃을 돌보는 손이 되는 것이 골목 상인들이다. 사회가 지켜주어야 하는 수혜자로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동네와 주민들을 지켜주는 또 하나의 보호막이다.

요즘 오래된 골목에 다시 찾아와 둥지를 트는 책방, 찻집, 꽃집, 과일가게가 반갑고 고마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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