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물으면 묵묵히 손가락 하나 세워 보여
깨달음 없이 흉내 내는 제자 손가락 잘라

송림 사이로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김해 장유 계곡을 따라 오르면 개나리가 화사하게 반기고 길가의 벚꽃은 벌써 꽃잎을 흩날리고 있다.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유명한 말씀으로 큰 깨달음의 메시지를 던졌던 성철 스님의 모습도 장유사 계곡 아래 맑은 물소리와 함께 떠오른다.

고승들의 일화가 적힌 책에는 언제나 법에 대한 잔잔한 기쁨이 있다. 타지 스님은 누가 무슨 말을 물어도 막대기로 땅을 치기만 하였다 하여 타지 스님이라 이름하였고, 누가 무엇을 물어도 창을 뽑아 들기만 하였다는 마엄 스님, 그 누가 와도 손가락 하나만 세웠다는 구지 스님을 생각하면 한세상 깨달음 속에서 살다가 가신 멋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은 가르침을 청하는 이들에게 땅을 치고, 칼을 뽑아 들고, 손가락을 세우며 현묘한 진리 자리를 말 대신 전하려고 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를 더하는 것은 손가락을 세우셨다는 구지 스님 이야기이다.

구지 스님 밑에 어린 상좌가 한 사람 있었다. 그 어떤 손님이 와서 도를 물어도 스님은 묵묵히 손가락 하나만 세우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손님은 머리를 끄덕이며 합장 경배하고 물러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지내던 상좌가 하루는 구지 스님이 밖으로 출타하고 계시지 않을 때 손님이 오셨다. 구지 스님이 안 계신 것을 알게 된 손님은 그냥 가려고 하는데 어린 상좌는 도를 물어주소서 하고는 스님을 흉내 내어 손가락을 세웠다.

머리를 끄덕이며 합장하고 돌아가는 손님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행동이 대견하여 출타에서 돌아온 구지 스님에게 그동안 행동을 자랑하였다. 기가 막히는 상좌의 이야기를 듣고는 구지 스님은 상좌에게 다시 도를 물었다. 똑같이 스님을 흉내 내어 손가락을 세우는 상좌의 손가락을 한순간에 칼로 베어 버렸다. 깜짝 놀라 도망치는 상좌를 부르니 뒤돌아보는 상좌에게 스님은 다시 손가락을 세운다. 상좌도 따라서 손가락을 세우나 손가락이 잘라져서 없다.

그 순간 상좌는 스님이 손가락을 세우는 참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교법 제정을 위하여 부안 봉래정사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한다. 어느 학인(學人)이 스승에게 도를 물었더니 "너에게 가르쳐주어도 도에는 어긋나고, 가르쳐 주지 아니하여도 도에는 어긋나니 어찌하여야 좋을꼬" 하였다 하니, 그대들은 그 뜻을 알겠는가.

좌중이 묵묵하여 답이 없거늘 때마침 겨울이라 흰 눈이 뜰에 가득한데 대종사 나가시어 친히 도량(道場)의 눈을 치시니 한 제자 급히 나가 눈가래를 잡으며 대종사께 방으로 들어가시기를 청하니, "나의 지금 눈을 치는 것은 눈만 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현묘한 자리를 가르침이었다"고 하셨다 한다.

계곡 바위틈 사이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깨달음이 있는 3월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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