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상·목공예·철학 등 필수과목 외 선택교과 다양
수업도 학생 주도 토론방식...성적보다 개성 살리는 교육
민간수탁자 자율성은 미흡 "교육과정 참여 등 보완할 것"

경남지역에 민간위탁형 대안고등학교 2곳이 문을 열었다. 지난 8일 남해보물섬고가 첫 신입생을 맞았고, 지난해 김해 금곡무지개고가 앞서 개교했다. 두 학교는 2016년 전국 17개 시도 5개 권역 5개(강원·대구·전남·김해·남해) 민간위탁형 공립대안고 선정에 따라 설립됐다. 이들 학교는 기존 대안고교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교육과정을 운영하는지 등을 살펴봤다.

◇남해보물섬고 = 지난 12일 방문한 학교에서는 환경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황경미 교사는 칠판에 자신을 소개하는 '햇님 용돈', '비건' 등 단어들을 적어두고, 학생들과 대화했다. 학생 10여 명은 서로 마주보도록 앉아 교사가 적어둔 단어가 어떤 의미일지 유추하며 의견을 말했다.

남해보물섬고는 이 같은 환경 수업 등 다양한 교과를 운영한다. 학교가 있는 마을과 연계한 환경 수업도 계획하고 있다. 마을 생태지도 만들기, 남해바래길을 걷는 이동학습 등 학생들이 주도해 만들어갈 예정이다. 바다와 가까운 학교 특성을 살려 바다에서 수업을 하면서 생존 수영과 해양생물 보호활동 등 수업도 준비하고 있다.

▲ 지난 12일 첫 환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남해보물섬고 모습.  /우귀화 기자
▲ 지난 12일 첫 환경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남해보물섬고 모습. /우귀화 기자

국어·영어·수학 이외에도 외부 강사를 통한 선택교과도 다채롭다. '몸짓과 예술' 과목은 사진·영상편집이나 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진로와 자립' 과목은 음악과 목공예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사진·영상·춤·음악·목공예·농업·연극·미술 강사가 학교 교사와 협력해 학생들에게 교과를 가르친다.

첫 주에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위해 학생과 교사가 둥글게 앉아서 서로 존중하기 위한 약속을 만들었다.

신입생 15명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다. 교실마다 학생에게 교사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붙어 있다. '나라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성민아, 너의 곁에 항상 우리가 있을게' 등이다.

김유진 학생은 "학교에 와보니 대학 입시 교육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12일 남해보물섬고 교실마다 붙어 있는 교사들의 환영 인사.  /우귀화 기자
▲ 지난 12일 남해보물섬고 교실마다 붙어 있는 교사들의 환영 인사. /우귀화 기자

◇김해 금곡무지개고 = 2년 차를 맞은 이 학교는 지난해 15명 학생에 이어 올해 16명 신입생을 맞았다. 지난해 국어·윤리·과학·음악 교사에 이어 올해는 미술·수학·체육 교사도 수업한다. 학생들은 필수 과목인 국어·사회 외에도 철학·과학교양·공연실습·어울림프로젝트·생활수학·문예창작 등 다양한 교과를 선택해서 듣는다.

지난 15일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철학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교사와 함께 읽고, 저자의 글을 분석하고 토론했다. 칠판에 책을 읽은 후 함께 토론하려는 질문을 각자 적었고, 이 중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학생의 질문으로 토론을 이어가기로 했다. 선택된 질문은 '행복이 물질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물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어서일까, 용기가 없거나 그 생활에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면 길든 것일까'였다.

▲ 지난 15일 김해 금곡무지개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  /우귀화 기자
▲ 지난 15일 김해 금곡무지개고 학생들이 쉬는 시간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 /우귀화 기자

학교는 지난해 인제대 U디자인학과 실내디자인전공과 함께 도서관, 홈베이스에 대한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해서 원하는 형태의 도서관과 홈베이스를 디자인해서 만들었다.

'길 학교(road school)'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에 학교 안에서 1주일간 캠핑을 했고, 올해는 인턴십 등을 계획하고 있다.

2학년 강성민 학생은 "도자기·인테리어·목공·마술·농사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기회가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학생 내면 성장에 집중 = 이처럼 두 학교는 대학 입시 위주 교육이 아닌 학생의 내면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명기 남해보물섬고 교장은 "대안학교로서 함께 사는 법, 성과보다 학생 내면의 성장, 성찰을 중요하게 여기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15일 김해 금곡무지개고 철학 수업 시간 토론할 질문거리를 칠판에 적고 있는 학생들.  /우귀화 기자
▲ 지난 15일 김해 금곡무지개고 철학 수업 시간 토론할 질문거리를 칠판에 적고 있는 학생들. /우귀화 기자

조생연 금곡무지개고 교장도 "학생 하나하나가 가진 특성을 교사와 같이 알아가면서 세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학교 문화를 만들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20대 청년으로 성장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민간 자율성은 부족 = 민간위탁형 대안고교는 교육부가 민간 대안교육을 위한 미국 차터스쿨에서 착안해서 시작했지만, 현재 경남에서 운영되는 방식은 민간 자율성이 아직은 크지 않다. 남해보물섬고는 상주학원, 금곡무지개고는 김해대안교육사회적협동조합이 민간 수탁 운영자로 돼 있지만, 실제 공모 교장 추천 이외에 관여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교사도 경남도교육청 소속 공립학교 교사로 구성돼 기존 공립 대안학교와 큰 차이가 없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개교 초기에 학교 인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 민간 수탁자가 학교 운영위원회·교육 과정 등에 참여해서 공립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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