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빼가는 대기업, 관계 탓 신고 못해
"기업으로서 진짜 해야 할 일 해주세요"

가뜩이나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어제 우려스러운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올 상반기 신입직원을 채용하겠다는 대기업보다 경력직을 뽑겠다는 대기업이 많다는 뉴스였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이 대기업 201곳을 대상으로 상반기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경력직원을 뽑겠다는 업체는 55.2%인 데 비해 신입을 뽑겠다는 기업은 43.3%로 조사됐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도 이 뉴스에 눈길이 쏠렸다. 함안상공회의소가 최근 '중소기업 기술개발 인력 스카우트 방지에 관한 건의문'을 청와대와 대한상의 등에 보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건의문을 요약하면 국내 굴지 대기업이 함안 한 중소기업에서 인력을 빼내가려다 무산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대기업이 최대 600만 원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작업을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함안상의는 만약 기술인력이 빠져나갔다면 회사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단이라는 위기를 겪을 수 있었다며 대기업의 중기 인력 부당 스카우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부당한 인력 채용을 신고하더라도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건의문을 받아 기사를 쓰면서 생각지 않은 문제에 부닥쳤다. 피해 기업인 만큼 회사 이름을 밝히는 게 당연하다고 봤지만 업체 임원 생각은 달랐다. 임원은 "그러잖아도 회사 기술력이 향상하다 보니 해당 대기업으로부터 견제가 심한데, 이름을 밝히게 되면 더욱 곤란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대기업의 부당 인력채용을 신고해도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는 법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취재 도중 대기업 홍보실에서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요즘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대부분 인력 채용을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대답이었다.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는 사내 공람용으로, 우수한 인력을 추천받기 위한 당근책으로 성과급을 주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인력을 빼 온 게 아니니 기사에 회사 실명을 밝혀서는 안 된다며 당부했지만 은근한 협박으로 느껴졌다.

사실 임금이나 복지제도 등 모든 면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중소기업 직원이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으로 옮긴다면 축하할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처럼 대기업이 문건을 만들어 타깃 회사로 경쟁사나 협력사 등을 꼽고, 업계 키맨 등을 빼오면 추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발상은 비난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끝끝내 상대 회사 이름을 밝히지 못할뿐더러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이름마저도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지역업체 대표 하소연은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대기업은 기업으로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기술 등을 개발해 신규사업을 해야 하며, 개발한 기술을 협력업체에 전수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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