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경작은 필수 조건 아냐...영농경력도 참고사항일 뿐
사저 면적 단순 비교는 무리...양산 주민 "투기 운운 황당"

또다시 대통령 사저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청와대 경호처는 지난해 4월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일대 지산리 313번지, 363-2∼6번지 일대 3860㎡ 터를 퇴임 후 사저로 쓰려고 사들였다.

논란은 당시 미래통합당 안병길(부산 서·동구)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사들인 지산리 363-4번지 1844.9㎡ 터를 두고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과 맞물려 대통령 사저 이전 과정을 불법 농지취득·형질변경을 통한 '투기'라고 주장하는 등 야권과 보수언론 공세는 한층 거세지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들어설 양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전경. 사방이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매곡마을보다 열려 있는 지형이긴 하지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통도사가 상당부분 토지를 갖고 있어 봉하마을처럼 개발할 여지는 적은 곳이다. 문 대통령이 사들인 사저 터 전경. 뒤편에는 현재 차밭 등을 조성한 농지가 포함됐다. /이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들어설 양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전경. 사방이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매곡마을보다 열려 있는 지형이긴 하지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통도사가 상당부분 토지를 갖고 있어 봉하마을처럼 개발할 여지는 적은 곳이다. 문 대통령이 사들인 사저 터 전경. 뒤편에는 현재 차밭 등을 조성한 농지가 포함됐다. /이현희 기자

◇농지법 오해 또는 진실 = 야권은 농지를 소유하려면 자경을 해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거나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저와 거리를 고려하면 청와대에 있는 문 대통령과 김 여사가 자경할 수 없는 상태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야권은 지난해 국정감사에 양산시 담당 공무원까지 증인으로 출석시켜 농지법 위반 여부를 따졌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당시 담당 공무원은 "취득 농지에 차나무, 매실나무 등 다년생 식물을 키우고 있어 문 대통령이 농업경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했다"고 답했다.

농지법 제6조 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농지법은 기본적으로 농업경영을 원칙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 농업경영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려면 대통령령에서 정한 농업인 요건을 갖춰야 한다. 시행령 제3조에서는 △1000㎡ 이상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농지에 330㎡ 이상 고정식 온실·버섯재배사·비닐하우스, 그 밖의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농작물 또는 다년생 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자 등으로 농업인 범위를 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면 법상 농업인으로 보는데 문 대통령이 취득하려는 농지 현황을 검토한 결과 1000㎡ 이상 터에 유실수를 심어 상당 시간과 노동력 없이도 농업경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했다는 것이 양산시 설명이다.

그럼에도, 야권과 보수언론에서 불법을 주장하는 것은 '농업경영'과 '자경'이라는 개념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농지법 제2조 4항에서 농업경영은 "농업인이나 농업법인이 자기의 계산과 책임으로 농업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고, 5항 자경은 "농업인이 그 소유 농지에서 농작물 경작 또는 다년생식물 재배에 상시 종사하거나 농작업 2분의 1 이상을 자기의 노동력으로 경작 또는 재배하는 것과 농업법인이 그 소유 농지에서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다년생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고 돼 있다.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의 자경(自耕)은 농업경영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자경 자체가 농지법에 정한 소유 조건은 아니다.

다시 말해 문 대통령이 사들인 농지가 1000㎡ 이상이고 다년생 식물을 이미 경작하고 있었고, 취득 이후 계속 경작할 계획이라면 절차상 문제 될 것 없다는 것이 양산시 답변이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지법에서 정한 위탁경영도 할 수 있다. '자경'과 '농업경영'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야권이 '자경'을 농지 소유 필수조건처럼 주장하면서 문 대통령이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 영농경력을 '11년'으로 적은 것을 두고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획서에 적는 영농경력이나 영농거리 등은 참고사항일 뿐 신청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농지 취득을 위해 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은 필수지만 세부 내용에 따라 위법 여부를 판단할 법적 기준이 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 문 대통령이 사들인 사저 터 전경. 뒤편에는 현재 차밭 등을 조성한 농지가 포함됐다. /이현희 기자
▲ 문 대통령이 사들인 사저 터 전경. 뒤편에는 현재 차밭 등을 조성한 농지가 포함됐다. /이현희 기자

◇야권·보수언론 이중잣대 = 농지 취득 논란은 최근 LH 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과 맞물려 농지를 대지로 변경할 때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지를 대지로 변경하는 지목변경은 부지 조성이나 토목 공사를 위한 전용 허가·형질변경 절차를 거쳐 신청하고 나서 건축물을 준공하면 마무리된다. 논이나 밭, 임야 등을 사들여 전원주택 등을 지어 지목을 변경해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투기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바라보려면 '대통령 사저'라는 공간이 갖는 특수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사적 공간이자 공적 공간인 사저를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엇갈릴 수 있다. 현행법상 대통령 퇴임 후 사저는 대통령 사비로 짓고 경호 등에 필요한 시설과 운영비는 법에 따라 국가가 부담한다. 야권은 사적 공간이라는 특성을 부각해 투기 의혹을 제기하는 반면 여권은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공적 기능을 강조한다.

이 같은 공방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를 둘러싼 '아방궁' 논란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주간조선>이 '봉하마을 노무현 타운 6배로 커졌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이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 예산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경쟁처럼 이어진 보도는 '노무현 타운=호화사저=아방궁'이라는 말을 기정사실화했다. 나중에는 봉하마을과 직접 관련 없는 김해시 사업을 관련 예산으로 부풀려 사저 지원 예산이 '495억 원'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016년 5월 봉하마을 사저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고 나서 대다수 언론이 '아방궁과 거리가 먼 소박한 형태'라고 보도했지만 과거 보도를 사과한 언론은 없었다. 그런데도 야권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현재 문 대통령 사저를 둘러싼 보수언론 보도와 야권 주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조선비즈>는 '문 대통령 양산 사저 인근 655억 원 들여 도시재생'이라는 보도에서 정부가 삼호동 서창시장 일원을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선정한 것을 두고 "매곡동 사저와 직선거리로 약 5㎞ 떨어져 있고, 퇴임 후 사저 부지로 거론되는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과는 직선거리로 약 12㎞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서창시장은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매곡마을 사저에서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데다 평산마을은 천성산으로 가로막혀 아예 생활권이 다른 곳이지만 '직선거리'로만 연관성을 부각하면서 과거 보도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 항공촬영한 사저 매입지. /연합뉴스

아방궁 논란에서 보여준 보도 행태는 '사저'라는 사적 공간 특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도덕성 문제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권은 국가안보상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무언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사저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실을 왜곡해 야권과 보수언론이 의혹을 주고받으며 정치적 반사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남에 있는 전임 대통령 사저와 지역에 있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사저를 크기만을 놓고 단순비교하고, 흥신소처럼 뒷조사에 열을 올리는 것은 공적 기능을 하는 대통령 사저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훼손하려는 시도라는 생각이다.

평산마을 역시 인근에 고속도로 나들목과 KTX 역사가 있어 교통 접근성은 좋은 편이지만 앞으로 개발 여지는 적은 곳이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통도사가 상당 부분 땅을 소유하고 있어 대규모 택지개발 등 도시개발사업에 제한이 있다. 사저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주민 대부분 대통령 사저 효과를 기대하면 했지, 부동산 투기를 위해 평산마을로 사저를 옮겼다는 주장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주민은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하려고 도로 하나 내기 어려운 시골마을 땅을 사들였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이미 앞선 지주가 지목을 변경하고 남은 농지라 더는 시세 차익을 얻기 어려운 곳을 두고 투기 운운하는 모습은 사저가 들어와 조금이나마 지역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주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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