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비밀주의·폐쇄성 강해
파악 못한 사고·문제 더 많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2011년 3월 11일)가 일어난 지 10년이나 흘렀지만, 수습은 아직이다. 고향을 잃고 일본 전역을 떠도는 피난민이 아직도 4만여 명에 이른다. 일본에서도 사고 전까지 '원전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있었다. 하지만 예측을 뛰어넘는 재해 앞에서 무력했다.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에 막상 사고가 발생하자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세계 원전 밀집도 1위인 한국은 후쿠시마에서 뭔가 교훈을 얻어냈을까. 사고 이후에도 국내 원전 곳곳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2분 블랙아웃, 한 달 은폐 = 후쿠시마 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2년 2월 9일,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정비 중 직원 실수로 외부 전원이 끊겼다. 비상용 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12분간 발전소 전력이 완전히 상실됐다. 비상용 디젤발전기는 사고 후에도 한 달이 넘도록 작동하지 않았다.

원전에 전원이 끊기면 냉각기능이 상실돼 노심용융(멜트다운)까지 일어날 수 있다. 당시 연료봉 교체를 위해 원자로가 돌아가지 않아 심각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던 점이 천운이었다. 만약 정상가동 중이었거나, 예측 못한 자연재해가 겹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실제 지난해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고리원전 일대를 통과했을 때도 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 외부전력이 차단된 일이 있었다. 이때는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작동했지만 관리 부실이나 재해로 말미암은 고장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이 한 달 동안이나 은폐됐다가 뒤늦게 보고됐다는 사실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자력 업계 비밀주의가 워낙 공고해 얼마나 은폐된 사고가 더 많을지 알 수 없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 정기검사를 강화하는 등 폐쇄성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탈핵경남시민행동이 10일 경남도청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년을 맞아 원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탈핵경남시민행동이 10일 경남도청 앞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년을 맞아 원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부실공사·정비 = 2017년 전남 영광군 한빛원전 계획예방정비 중 원자로 증기발생기 안에서 11㎝ 길이의 망치가 발견됐다. 증기발생기 안에는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냉각재가 돌고 있어 이물질에 손상을 입으면 누출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시민사회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한빛원전 부실시공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격납건물 콘크리트에서 200곳 이상 공극(비어 있는 틈)을 발견했다. 가장 깊은 곳은 콘크리트벽 두께(1.67m)에 거의 근접한 1.5m에 달했다.

이 대표는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지만 중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충격흡수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있는 위험요소였던 셈이다. 원안위는 공극 발생 원인이 야간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에는 핵심 시설인 원자로 헤드 관통관 부실 공사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 한빛 5호기 원자로 정비 과정에서 인코넬690이라는 특수재질로 용접해야 하는 부위에 스테인리스 재질을 사용한 것이다. 관통관은 핵연료를 제어하는 제어봉을 삽입하는 통로다. 부실 시공으로 문제가 생기면 핵분열을 통제하지 못해 위험한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일로 시공사인 두산중공업을 고소했지만, 6호기 설비개선 용역을 다시 두산중에 맡겼다. 이 문제도 공익제보로 세상에 드러났다. 원전 관리주체가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는 방증이다.

◇방사능 누출 = 최근에는 월성원전 터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누출됐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수원이 2019년 자체 조사 결과 3호기 터빈건물 지하수 배수로 맨홀에서 ℓ당 71만 3000베크렐(Bq)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이다. 정상배출기준인 4만 베크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더욱이 이 배수로는 정상적인 방사성 물질 배출 경로가 아니었다.

한수원은 "오염된 지하수가 원전 터 밖으로 퍼지지 않았다. 원인은 조사 중"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수원은 2017년 이미 터 인근 관측 우물에서 ℓ당 2만 8200베크렐 상당의 고농도 삼중수소를 검출하고도 뒤늦게 조사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예상치 못한 경로로 방사성 물질이 빠져나갔고 원안위와 한수원이 이를 오래전에 알았음에도 곧바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라면서 "만약 방치했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갈 수 있었다. 규제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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