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트렁크〉 문학동네 복간
1995년 발표 '파격적 시' 평가
"현실이 억만 배는 더 기괴해"

'살인적인 음란', '도발적이고 엽기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한국시단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진주 출신 김언희(68·사진) 시인의 첫 시집 <트렁크>가 25년 만에 다시 나왔다. 문학동네의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를 통해서다. 김 시인의 시집은 1차분 열 권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여성 시인의 위상을 드러냈다.

김 시인은 지난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1995년 <트렁크>를 시작으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보고 싶은 오빠>, <GG>를 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시'하고만 살고 싶어 50대 초반 교사직을 그만뒀다. 현재 진주에서 시를 쓰고 있다.

▲ 〈 트렁크 〉 김언희 지음
▲ 〈 트렁크 〉 김언희 지음

-절판된 시집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25년 세월을 겪고도 묻히지 않고 살아남아서 복간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 출판사의 여러 시리즈 중 여성 시인이 1번이 된 건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김 시인의 작품에 대해 "이전의 여성시 대부분을 내숭으로 만들었고 이후의 여성시 상당수를 아류로 만들어 버렸다"고 평했다. 특히 첫 시집은 성에 대한 노골적 표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당대 파격적이었다.

"나는 정말 예상을 못 했다. 첫 시집 발간 이후 그로테스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실이 더 그로테스크하지 않나? 우리 현실이, 삶이, 세상이 내 시 몇 줄보다 억만 배는 그로테스크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시는 이런 것이다'는 헛된 환상이 있었다. 말하자면 (나의 시가) 시의 허상이나 어떤 허위를 깨부수었다. 특히나 여성 시인이 시에 대고 직접적으로 성에 대해 말한 시인이 없었다."

▲ 김언희 시인
▲ 김언희 시인

-에피소드는 없었나.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조선일보>에 '살인적으로 음란한'이라는 머리기사가 나왔다. 이후 2주 만에 2쇄를 찍고 진주문고에서도 하루 60권이 팔렸다. 그 시집에 기막힌 사진이 들어갔는데 '당신들이 보고 싶은 거 이거지? 봐라'며 실었다. 진주문고에서 책을 산 사람이 이튿날 환불하러 왔더라. 이 시집을 집에 들고 갈 수 없다며."

-<트렁크>를 읽고 통쾌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던 반면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

"시를 왜 이해하려고 하느냐. 시는 아무것도 의미 안 한다. 즐기면 된다. 예전에 진주문고에서 시인과 함께하는 낭독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크게 깨달은 게 있다. 모든 사람이 내 시를 '어렵다', '난해하다'고 하는 데 중학교 3학년 독자는 '왜 못알아들어요? 시가 재밌다'고 하더라. 사람들은 이 시가 뭘 이야기하고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그냥 시를 즐긴 거다. 어른이 되면서 아주 밝은 유리창에 여러 가지 편견, 아집, 기타 등등이 때처럼 묻고 때 묻은 유리창으로 내다보니까 시가 난해한 거다."

-시집을 읽으며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억눌린 게 탈피한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도 경험했지만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한 거고 그게 나온 거다. 아마 내 시는 분화구인 것 같다. 한국 여성들이 지금껏 눌려오고, 짓밟히고 했던 게 터져 나온…."

개인적으로 <트렁크>에 실린 약 60편 중 '트렁크', '탈수중', '호텔 온 호라이즌(HOTEL ON HORIZON)'이 인상적이었다. 왜냐면 그의 말마따나 '만날 구두 신고 발등 긁는 소리'가 아니라 솔직하고 대담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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