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박지호 군·강지현 씨
생명 존중 외에도 의미 다양해
거대 축산업 기후위기의 원인
꾸준한 실천 주변 인식도 바꿔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1~2월 '기후위기교실'에 이어 3월부터 새로운 기후위기 기획기사를 싣습니다. 먼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어 6가지를 꼽았습니다. 매달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입니다. 첫 핵심어는 '채식'입니다. 축산업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비중이 크다 보니 지금의 식습관을 바꿔 조금이나마 채식을 실천해보자는 제안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채식 급식 공론화를 준비 중입니다. 지역민들을 만나 채식의 필요성과 실천 방법 등을 모색해봅니다. 안지산 기자는 짧은 기간이지만 2주간 채식을 직접 해본 경험담을 들려드릴 계획입니다.

지난달 19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카페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학생과 채식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를 함께 만났다. 박지호(12) 군과 강지현(38) 채식평화연대 상임이사다. 박 군은 2년 전부터, 강 이사는 5년 전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 왜 채식을 하게 됐는지, 기후 위기 시대에 왜 채식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 박지호(왼쪽) 군과 강지현 씨가 각자 채식을 실천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박지호(왼쪽) 군과 강지현 씨가 각자 채식을 실천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강지현) 지호 군은 언제부터 무슨 계기로 채식을 하게 됐나요?

박지호) 2019년 9월에 이모가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준다고 해서 고른 책이 <육식의 종말>이었어요. 읽어보니 소를 죽이는 과정이 진짜 끔찍했어요. 소를 키우기 위해서 주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소름 끼쳤고요. 그래서 책 읽은 다음 날 어머니에게 채식을 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선생님은요?

강지현) 나는 2017년 4월에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첫 부모 교육으로 베지닥터 분의 강의를 들었어요. (베지닥터는 건강과 생명을 위한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이었는데요. 거기서 고기는 동물의 생명력이 없는 사체고, 동물성 식품이 생활습관병의 주된 원인이라는 강의 내용이 뇌리에 크게 박혔어요. 애 학교는 비인가 대안 학교인데, 학교에서도 채식 급식을 하려고 노력하긴 했어요. 급식 김치에 젓갈이 들어가는 정도고, 고깃덩어리가 들어가진 않았거든요.

박지호) 와, 좋겠어요!

강지현) 그때 강의를 듣고, 고기가 진짜 사체로 보였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육식을 진짜 좋아했거든요. 외식은 무조건 고기였고, 일주일에 한 번은 통닭을 먹었어요. 그런데, 그 강의를 듣고 바로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고 고기를 다 꺼냈어요. 내 몸에 고깃덩어리를 이제 넣고 싶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고, 아이들에게도 왜 엄마가 고기를 안 먹게 됐는지 설명하니까 두 아이도 같이 채식을 하겠다고 했어요.

박지호) 사실 채식도 여러 단계가 있잖아요. 저는 고기는 먹지 않지만, 생선·우유·달걀·유제품까지는 먹는 페스코 단계 채식을 실천하고 있어요. 채식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대신 학교에서는 급식을 그대로 먹었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학교 급식은 선택하지 않고 먹고 있어요.

강지현) 나는 아까 말한 강의를 들은 다음 날부터 바로 비건(완전 채식)이 됐어요. 육식을 즐겼던 터라 먹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참았어요. 처음에는 육고기 딱 한 점만 먹고 내일부터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번 고기를 만드는 과정이 상상이 됐어요. 치즈·순대 등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니까 비건 치즈, 비건 순대를 찾아서 사게 됐어요. 비건을 하고 가장 긍정적인 결과가 요리를 하게 된 부분이에요. 삼시 세끼 사 먹을 게 별로 없다 보니까 아이들과 함께 요리를 하게 됐어요.

박지호) 저는 고기만 안 먹는 정도지만, 비건은 진짜 힘들 것 같아요.

강지현) 주변에서 너만 채식을 하지, 왜 성장기 아이에게 비건을 강요하느냐는 말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애 할머니·할아버지가 너무 걱정을 많이 하셔서 믿음을 드리려고 계속 인바디 등 검사를 하고 있어요. 철분· 칼슘 등이 부족하지 않다는 수치를 확인시켜드렸어요. 첫째 아이는 반에서 키가 큰 편이에요.

박지호) 저도 외할아버지께서 채식하면 신체 건강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진짜 많이 하셨어요. 지금은 건강한 모습을 보고서는 더는 그런 말씀 안 하고 계시고요. 그런데 친구 중에는 제가 기후 위기에 채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너는 채식한다더니 왜 (고기가 나오는) 급식을 먹느냐고 하는 애들이 있어요. 지금은 기후 위기 얘기를 하려고 채식을 하는 모습을 더 보여주려고 해요.

강지현) 다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물론 친구들이 너무 속상하게 말할 때가 있지만, 편하게 생각했으면 해요. 선생님 딸도 비건 시작했을 때, 친구들이 놀려서 만날 울면서 집에 왔어요. 동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채식한다고 하면, 그러면 식물도 생명이 있는데 왜 먹느냐고 하고. 점심때만 되면 채식하는 이유에 대해 답변을 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가 커서 울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길고양이 밥 주던 친구가 '소도 고양이랑 같겠지'라며 나도 채식할까 하고 먼저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나도 학부모 만날 때마다 채식 도시락 싸서 다니니까, 다른 학부모들이 먼저 다 같이 채식을 하자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올해 3월부터는 첫째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급식을 채식으로 하게 됐어요.

박지호)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육식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육식의 종말>에서 봤는데요. 곡물을 먹인 고기 육질이 부드럽다는 이유로 소한테 곡물을 먹이고자 개간한 땅이 필요해지고, 그러다 보니 열대우림까지 파괴하게 된다는 걸 책에서 봤어요. 과한 육식은 환경에도 안 좋은 거죠. 소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려면 곡물 16파운드가 든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식량 불평등 문제가 가속화하기도 해요. 기아에게 옥수수를 주는 게 아니라, 그 옥수수를 소한테 줘서 더 잘사는 사람들이 소를 먹게 되는 거니까요.

강지현) 맞아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중에 축산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후 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문제 등은 재정적, 행정적 절차 등이 필요하지만, 축산업의 메탄가스 등을 줄일 수 있게 육식을 줄이는 것은 그런 게 필요가 없잖아요. 1명이 채식을 선택하면, 하루에 물 4164ℓ, 곡물 18㎏, 숲 2.8㎡를 아낄 수 있다고 해요. 채식 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해요. 채식을 하면 숲도 살아나고, 지구 열 함량도 줄어들고, 생명까지 살릴 수 있는 거지요.

박지호) 경남지역 학교에도 채식 선택권이 얼른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첫 번째로 신청할 텐데요. 지금 당장 모두 육식을 끊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채식을 하면서 나도 기후 위기 대응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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