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한 서린 일제강점기
광복 밀알 항일 투사와 달리
부역 통해 영욕 채운 친일파
3.1절 맞아 교훈 되새겨야

2021년의 삼일절, 102주년을 맞는다. 1919년 3월 1일부터 서울 탑골 공원에서, 충남 천안에서, 경남 창원에서 전국 곳곳에서 거국적으로 일어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에 항거한 기념비적인 독립운동이 3·1 독립만세 운동이다.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이 목숨 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후 안중근, 김봉창, 김원봉 등 수많은 독립투사와 선조들의 항일운동 덕에 민족정신은 살아남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 첫 단락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되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의 한은 그 무엇보다 깊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 시대의 암울했던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함이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정체성

하지만 광복 77년이 되었음에도 친일의 역사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부류가 기승을 부리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마크 램지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규정하는 논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만화가로 활동하는 젊은이 윤서인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친일파 후손에 비교하면서 대충 살아서 그런 거라며 비하를 일삼았다. 이뿐만 아니라 "김구, 안중근, 유관순 열사가 우리나라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안중근은 나라를 만든 적이 없다. 그냥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뿐"이라며 선조들의 의거를 헐뜯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가해자 일본의 논리에 기대어 억지 주장을 하는 부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도전받게 될 것이다.

◇역사 왜곡에 기댄 억지 주장들

요즘 부쩍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서 6년 전에 읽었던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선안나 지음·피플파워 펴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자 한 7명의 항일투사와 일제에 빌붙어 민족정신을 외면하고 일신의 안락을 추구한 7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비교하고 있다. 책을 펼치기에 앞서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암살>의 한 장면이 망막 위로 재생되는 듯하다. 광복 후 독립투사 안옥윤이 친일파 염석진에게 총을 겨누고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2021년의 대한민국, 아직도 해방된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선안나 작가는 책 머리말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근현대사는 더욱 배울 기회가 없었고, 공산당이 그러하듯 친일파도 적개심을 일으키는 모호한 악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주입된 선입견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은 역사가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더 빨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 작가가 저술에 들어가기 전 품었던 화두는 어쩌면 우리가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유도등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왜 동시대를 살면서 양 극단의 길을 걸었을까요? 환경이나 교육 탓이었을까요, 천성과 기질의 영향이었을까요. 어떤 요소가 삶의 방향성을 만들었으며, 의지는 어떻게 운명을 견인했을까요?"

◇항일 투쟁 이회영·나라 판 이근택

책의 첫 장을 장식한 인물은 항일 투쟁의 외길을 살았던 우당 이회영과 나라를 팔아 개인의 영화를 샀던 군부대신 이근택이다. 이회영은 '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항복 후손이다. 이조판서 이유승의 넷째 아들로, 요즘 말로 하자면 '금수저'였다. 이근택은 무인 집안 출신이다. 일찍 군대에 들어가 명성황후에게 잘 보여 남행선전관 벼슬을 얻었다. 이듬해 무과에 급제하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이 정도의 출신과 성장 배경을 놓고 본다면 이근택이 나라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이 두 사람의 선택은 완전히 반대의 길을 잡았다. 한일합병조약으로 조국이 식민지로 추락하자 이회영은 항일 전선으로 나섰다. "왜적 치하에서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말고, 만주로 가서 독립군들을 길러냅시다." 여섯 형제가 모인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하고 뜻을 모은 뒤 비밀리에 만주로 떠났다.

반면 이근택은 독립협회를 해산시킨 공로로 한성부 판윤(서울시장)이 되고 고종의 신임까지 받으며 이후 군부대신 자리에까지 올랐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직전 그는 일제의 세력을 감지하고 대한제국의 고위 공직자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희한한 선택을 한다. "군부대신의 자리에 오른 그는, 일제로부터 30만 원의 기밀비를 받고 궁중과 정부의 기밀 사항을 정탐하고 제보했습니다."(46쪽)

◇독립자금 안희제·땅 투기꾼 김갑순

책의 두 번째 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일제강점기 경제와 관련한 두 사람이다. 자산가들을 모아 독립자금을 만들며 민족이 살길을 끊임없이 열었던 안희제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망국을 기회로 치부한 조선의 땅 투기꾼 1호 김갑순을 다뤘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독립운동에 참여하면서 가진 돈은 죄다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백산상회는 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하고 10년 가까이 독립운동자금을 더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영업 이익이 있건 없건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손실을 메우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파산했습니다."(61쪽)

반면, 김갑순의 행보를 살펴보면 이근택과 마찬가지로 출세 가도를 달린다. 그는 공주 감영 관노 출신이다. 관노로 일을 할 때 노름꾼을 잡으러 갔다가 추행당할 뻔한 어떤 여성을 구해주는데 그 여자가 충청감사 소실로 들어가자 그 덕에 말단 공무원인 아전이 된다. 처세술이 남달랐기에 승진을 거듭한다. 이런 처세야 누가 뭐라 하겠나. 하지만 그가 돈을 만지고 땅을 관리하는 관리로 일을 하면서 농민의 원성을 사는 행실을 이어간다. 6개 군의 군수로 지내면서 그는 일약 거부가 되는데,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밀고하는 등 매국 행위를 일삼는다. 광복 이후 농지개혁, 화폐개혁 그리고 자손들의 재산분쟁을 거치고서도 그의 재산은 크게 줄지 않고 1961년 그가 죽었을 때 땅이 2271정보(1000만 평 남짓)나 있었다고 하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가 쌓은 부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역사 진실 제대로 알고 3·1절 맞아야

이외에도 책에는 만주의 세 손가락 여장군 남자현과 왕실의 스파이 흑치마 사다코 배정자, 어두운 시대에 빛을 노래한 시인 이육사와 조선어 폐지에 앞장선 베스트셀러 저자 현영섭, 일제강점기 가장 많이 구속된 언론인 안재홍과 황국신민화 시책에 앞장선 언론재벌 방응모, 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김마리아와 학병·징병을 권유한 여성 박사 1호 김활란, 일제와 투쟁하고 독재와 맞선 장준하와 독립군 토벌대 출신 전쟁영웅 백선엽을 나란히 올려 그들의 다른 선택을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겪은 일제강점기의 치욕은 세월이 흐른다고 없었던 일로, 또는 아니었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역사다. 램지어 교수 사례처럼 일본은 점령국 여성을 군인들의 성노예로 일삼은 자신의 과거를 정당성으로 포장하고자 교묘하고도 치졸한 방법으로 홍보하고 있다. 친일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만화가 윤서인 같은 부류의 한국인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선택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똑바로 알고 3·1절 102주년을 맞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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