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공짜주문·돈 구걸에 제보
독거 지적장애인…사기 피해도
"여태껏 방치한 어른들이 잘못"

최근 MBC <실화탐사대>에 '창원 외상남' 사연이 소개됐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는 데는 창원시 성산구 마루감자탕 사장 강현지(30) 씨 노력이 컸다.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수상한 그놈 = 강현지 씨는 지난해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수상한 메시지를 받았다. 일면식도 없던 ㄱ(21) 씨가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내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다. 계속된 돈 요구에 강 씨는 왜 돈이 필요한지 물었다. ㄱ 씨는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라며, 코로나19 탓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당장 생활비로 쓸 5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강 씨는 어린 나이에 힘겹게 생활하고 있을 ㄱ 씨가 안타까워 돈을 빌려줬다. 얼마 뒤 ㄱ 씨로부터 또다시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빚이 있는데 돈을 안 보내면 통장을 압류당하니 8만 원을 요청했다.

강 씨는 두 번이나 연락한 ㄱ 씨를 이상하게 여겼다. 혹시 사정이 딱한 청년이 아니라 사기꾼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강 씨는 "사기였다면 적당히 미끼를 던졌다가 안 되면 포기할 수도 있는데 밤새 메시지를 보냈다"며 "오죽했으면 잠을 안 자고 메시지를 보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 메시지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배은망덕 = 절실한 모습으로 꼭 돈을 갚겠다던 ㄱ 씨는 빌린 돈 13만 원 중 일부만 보내왔다. 강 씨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ㄱ 씨에게 "고소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돈을 갚으라고 했고, 전부를 받아냈다. 간간이 외상으로 음식을 보내달라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왔지만 강 씨는 모두 거절했다. 그렇게 ㄱ 씨를 잊고 지내던 지난 1월 강 씨는 우연히 ㄱ 씨가 여전히 돈을 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식당 사장들에게 외상으로 음식을 보내달라는 등 피해가 커진 상황이었다. 강 씨는 선의로 돈을 빌려줬건만 노력하는 모습 없이 손쉽게 돈을 구하려는 ㄱ 씨가 괘씸해 방송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몰랐던 이야기 = 강 씨는 제보할 당시 '나쁜 놈을 잡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취재가 계속되고 ㄱ 씨 정체를 알게 되면서 강 씨는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방송사 취재 결과 보육원에서 자란 ㄱ 씨는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았을 뿐 지적장애 3급 수준(7~12세)이었다. 초등학생이 홀로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다.

성인이 된 ㄱ 씨는 보육원을 떠나야 했지만 사회는 정글이었다. ㄱ 씨는 보육원을 나오자마자 휴대전화 사기를 두 차례 당했다. 국가 보조금이 있었으나, 이 사기로 수백만 원 빚을 진 탓에 보조금이 통장에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바빴다.

강 씨는 "다른 피해자들이 압박을 하니 ㄱ 씨가 빌린 돈을 갚겠다고 대출을 받았는데, 그 또한 사기였다"면서 "빨리 경찰서에 데려가야 겠는데, 혼자 일 처리를 못할 것 같아 같이 갔다"고 전했다. 경찰서에서 들은 얘기는 더 심각했다. ㄱ 씨가 휴대전화 사기로 진 빚이 ㄱ 씨가 아는 금액보다도 훨씬 컸던 것이다.

◇"도움 절실" = 경찰서에서 돌아온 강 씨는 ㄱ 씨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마침 방송 담당자로부터 ㄱ 씨가 한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고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 씨는 두툼한 겨울 이불과 베개를 들고 ㄱ 씨 집을 찾았다. 집안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외상으로 시켜먹은 배달음식을 제 때 처리하지 않아 악취가 났다. 강 씨는 집 청소까지 해주고 돌아왔다.

강 씨는 왜 ㄱ 씨를 돕는 것일까. 그는 "그 친구 잘못도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외상을 하거나 돈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일을 해야 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한 어른들이 더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ㄱ 씨가 밥을 먹거나 놀러 식당에 자주 오는데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알려만 주면 다 한다"라면서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ㄱ 씨를 도울 방법을 다 함께 찾아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4일 경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ㄱ 씨를 돕고자 나섰다. 상담을 진행한 센터 관계자는 "우선 보육원 시절부터 ㄱ 씨가 장애인 등록을 거부했다고 들어 ㄱ 씨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장애인 등록 여부를 떠나 ㄱ 씨를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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