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유신 연 띄워 전술 활용..
그리스 기원전 400년 제작 기록
연에 이름·송액영복 등 써넣어..
멀리 날려보내 한해 무탈 기도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어렸을 적 연 날리던 추억 때문인지 1979년 라이너스가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노래를 발표한 뒤로 연만 날렸다 하면 흥얼거리던 노래다.

정월 대보름이 이틀 남았다. 옛사람 기준으로 치자면, 사실 아직 설이다. 설은 음력 12월 30일인 섣달그믐 시작해 1월 15일인 대보름까지를 이른다. 그게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일하기 바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날을 기준으로 전날과 뒷날, 이렇게 사흘을 설 연휴라고 부르고 그에 맞춰 살게 된 것이다.

'설날'이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한 해가 서는 날'이다. 다른 말로 '새해가 시작하는 날'이다. '입춘(立春)'이 '봄의 시작 날'인 것처럼.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 농경 국가였기에 한겨울에는 일이 없었다. 대체로 농한기에는 방이나 마당에서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고 가마니를 짜는 등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거나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겨울철 놀이는 설에 집중되었다. 노는 날이 길어 그랬는지 섣달그믐부터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놀이는 다채롭기도 하고 많기도 했다. 지난 3일 본란 15회에서 '겨울 민속놀이'를 다루면서 말뚝박기, 자치기, 굴렁쇠 굴리기, 팽이치기 등 다양한 놀이를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연날리기는 대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놀이다. 지난 보름 동안 날리던 연을 이날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 세시 풍속 도감>을 쓴 홍영우 화백은 "초겨울부터 연날리기를 시작하는데 추위도 아랑곳없이 찬 바람 부는 언덕이나 들판에 나가 연을 날렸다. 연 높이 띄우기, 얼레에 감긴 실을 풀었다 감았다 하며 공중에서 재주 부리기,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버리는 연싸움 놀이들을 했다"(102쪽)고 회상했다.

▲ 언덕위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 /정현수 기자
▲ 언덕위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 /정현수 기자

◇연날리기에 얽힌 추억 = 요즘은 연날리기하면서 실에다 풀을 먹이는 일이 거의 없다. 연줄에다 풀을 먹이는 일은 연싸움에서 이기려고 수를 쓰는 것인데, 일종의 연싸움 병법이랄 수 있겠다. 풀을 쑤어 거기에 사금파리를 갈아 섞고 연실을 통과시키면, 실에 사기그릇 가루가 장착된다. 유리를 갈아서 풀을 먹이는 친구도 있었다. 풀을 먹이고 나면 어서 뒷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풀을 먹이고 얼레에 오래 두면 실끼리 엉겨 붙거나 굳어서 나중에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을 날려 일단 끝까지 실을 풀어서 한 번은 말리는 것이 정상적인 공정이다.

연싸움은 상대 연의 연줄을 끊는 싸움이다. 연을 둘이 어긋나게 띄워 실이 교차하면 얼레를 요령 있게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기술을 쓴다. 상대의 연줄이 끊어질 때 손으로 전해져 오는 그 느낌은 어른이 되어 맛본 낚시 손맛 이상이다. 통쾌한 기분으로 옆의 상대를 돌아보면, 굳은 표정 위로 눈물이 괸다. 그도 그럴 것이 연보다 비싼 연실에 사금파리 갈아서 풀을 먹이느라 고생한 것 생각하면 속이 상할 듯도 하다.

◇대보름날 연줄을 끊는 이유 = 큰 도시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대보름날 연을 날릴 때면 꼭 연줄을 다 풀어 날리거나 중간쯤에서 실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냈다. 연이 어디까지 날아갈까 하는 호기심에 날려버린 연을 따라 쫓아가 본 적도 있었다. 옆에서 연을 날리던 동네 큰 형들은 연줄을 끊은 뒤 합장하고 소원을 비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보름날 날려 보내는 연을 '액막이 연'이라고 불렀다. 이날은 연싸움을 자제했던 것 같다. 어떤 이는 연에다 자기 이름을 써넣기도 하고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건강하고 재수가 좋아진다고 믿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액막이연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예부터 그 액막이 연을 보더라도 줍지 않았다. 그 연을 만지면 누군가 날려버린 액을 자기가 뒤집어쓴다거나 연이 떨어진 집에는 재앙이 닥친다는 속설을 믿어서일 것이다.

▲ 연을 들고 있는 아이. /정현수 기자
▲ 연을 들고 있는 아이. /정현수 기자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연을 날렸을까 = 자료를 찾아보면, 삼국시대까지 올라간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647년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김유신이 전술용으로 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보다 훨씬 앞선 5세기 중반쯤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장천1호 벽화에 다양한 놀이가 그려졌는데, 여기 연을 날리는 듯한 그림도 있다고 하니 연의 역사는 참 오래되었다 싶다.

그런데 이 정도로 감탄하기는 이르다. 그리스 사람들은 BC400년에 연을 만들어 날렸다고 하고 중국 역시 기원전 200년에 군사 목적으로 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후인 헤이안 시대에 연을 날렸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유럽에서 시작한 연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연날리기 축제들 = 연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연날리기는 세계 공통의 풍습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연에다 벽사의식을 심어 정월 대보름날 날려 보내지만 다른 나라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 설 풍습이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는 특정일과 관계없이 연을 날린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정월이 아니더라도 행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을 날리는 놀이를 하고 있다. 다만 연날리기를 축제로 만든 곳은 여전히 정월 대보름에 맞춘 게 많다.

통영 한산대첩광장에서 열리는 '전통연날리기 및 민속놀이 경연대회'는 2019년 행사가 35회일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부산은 복천박물관에서 '새해 소망 연 만들기 및 연날리기' 행사를 개최해왔지만 역시 올해도 코로나19 여파로 행사를 열지 않는단다. 국내에는 이 외에도 연날리기 행사가 많다. 경북의 의성국제연날리기대회, 서울 한강연날리기전국대회 등 많은 곳에서 행사를 지역 및 국제 축제로 추진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연날리기는 국제 행사로 많이 열린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섬마을 푸에르테빈투라에서는 매년 11월쯤에 국제 연날리기 행사를 하고 중국 산둥성 웨이팡시에서도 매년 4월 셋째 주 토요일부터 사흘간 국제 연날리기 축제를 펼친다. 인도 역시 매년 1월 국제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중국 웨이팡 연날리기는 규모가 커서 30개국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참가한다고 하니 오랜 역사를 지닌 연의 대중성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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