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창원 지역 관한 시 다수
가혹한 자기반성 태도 인상적

"파란만장한 세월도/ 월이의 가녀린 허리를 감지 못하고/ 벗어나고 있다/ 오늘 밤/ 세찬 파도가 섬을 넘길 수 있는 약속을 한다/ 왜장의 몸에서/ 활짝 필 소름 꽃이라면/ 하염없이 쓰러질 바람과 함께"('바람꽃' 일부) 이 시에 등장하는 월이는 '고성의 논개'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재치로 고성의 지형을 잘못 읽은 왜군과 함선이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전멸된다. 그날의 비장함이 읽힌다.

▲ 〈 수직의 힘 〉 정이향 지음
▲ 〈 수직의 힘 〉 정이향 지음

고성 출신의 정이향 시인의 시집 <수직의 힘>에는 고성과 창원 등 지역에 관한 시가 많이 실렸다. "하루에 먹었던 양이 무려 1톤이라는/ 백악기, 중생대의 얼굴/ 그가 벗어놓은 발자국에 발 대신 손으로 더듬어/ 체온을 찾는다"('상족암에서' 일부)며 고성 공룡 시대를 회상하고 "나도 그녀를 따라/ 아이스크림 통 속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내/ 자연스럽게 입속으로 넣었다/ 앞에 보이는 싸늘한 문장/ 바닐라 아이스크림 1,500원"('서비스의 덫' 일부)이라며 창원의 어느 낙지집에서 일어난 일화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봄 직한 상황이어서 정겹다.

그런가 하면 늙어가는 일상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김경복 문학평론가(경남대 교수)는 정 시인이 쓴 '돋보기안경'을 두고 "화자는 '늙음'의 한 현상을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벌'로, 즉 '용서받지 못하는 가혹한 벌로/ 제일 먼저 눈을 흐리게 했다'는 인식을 한다"며 "젊은 시절을 조금 허랑방탕하게 보냈다는 통상적 차원에서의 자기반성을 넘어 가혹할 정도로 엄한 자기비판 내지 자학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삶의 끝에서 관조하는 눈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으로 끝나야 하는/ 나의 짧은 생이 서러운 것이 아니고/ 생각 없이 살아온 시간들/ 나의 머리를 치고 달아난다"('마지막 일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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