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학자, 오키나와 집단 자결사건 생존 80대 여성 구술 기록

망고와 수류탄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어색하기만 하다.

책에 등장하는 주무대는 일본 오키나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오키나와는 미군과 일본군의 지상전 무대였다. 저자인 기시 마사히코(54)는 사회학자이자 교수다. 그는 25년 넘게 오키나와를 찾아 현지인들의 '생활사'를 청취 조사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망고를 건넨 이가 있었는데,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80대 여성이다. 그는 오키나와전 '집단 자결' 사건 때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는 잊지 못할 악몽 같은 이야기를 처음으로 연구자인 마사히코 교수에게 털어놓았다.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오키나와전 당시 미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포로가 될 바에는 국가와 천황을 위해 자결하라고 강요했다. 군대에서 쓰는 무기인 수류탄을 나눠 주면서.

그가 받아든 수류탄은 터지지 않았다. 불발탄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로 뱉어낸 기억은 연구자 손을 거쳐 활자로 살아났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친 이가 더운 여름 고생하는 마사히코 교수와 학생에게 건넨 물건이 망고였다.

"1945년 저 섬에서 그녀는 일본군에게 두 개의 수류탄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2015년 이 공민관에서 수류탄 대신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준 것은 몇 개의 단단한 망고였다."

마사히코 교수는 길 위의 사회학자다. <망고와 수류탄>이라는 책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오키나와 전후사와 사회구조를 생각하고자 쓴 책이다. 책 제목에도 부제로 달렸듯이 '생활사'는 마사히코의 주된 연구 방법론이다. 책에는 앞서 망고를 건넨 인물처럼 오키나와 일반인이 기억하는 전쟁이 담겼고, 헤쳐나온 수많은 삶이 녹아있다.

한편으로 사회학자인 그는 양적 조사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책에 담았다. 연구자로서 행하는 조정과 개입 즉, 사회조사의 사회적 타당성을 반문하기도 한다.

"생활사 조사는 역사와 구조와 직접 관계된 특정 지식을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아주 중요한 목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구술자가 자라 온 환경, 생활 모습, 내력, 행위, 경험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시대의 어떤 지역에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조사와 비교하면 좀 더 개인적이고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조사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활사 조사를 하는 또 하나의 목적이다."

생활사 구술조사는 최초의 질문을 하기까지 준비 기간이 꽤 길다. 적어도 사람에게 무언가를 듣고자 긴 '도움닫기'를 지나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사회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학문이다. 또한, 이 작업에 끝이란 없다.

책 읽는 내내 돌아봤다. 사람을 살피고 사회문제를 파헤치는 일은 기나긴 준비를 거쳐 첫 질문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두번째테제. 304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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