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밤 한적한 마을 작업실 '분주'
재개발구역 살던 경험 등 작품에 녹여
"예술은 기다림…일단 많이 만들어야"

창원대학교와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 두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가 있다. 햇수로 5년째 밀양시 초동면 대곡리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최수환(42) 씨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마산에서 나온 그는 독일에서 유학한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에서만 살았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회원동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작업은 마산이 아닌 연고 없는 낯선 마을에서 하는 중이다. 지인의 소개로 연이 닿아 밀양에 작업실을 얻게 돼서다. 지난 19일 오후 5시 밀양 작업실에서 최 작가를 만나 2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만난 작가는 털털하면서도 쾌활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최 작가는 조각을 매개로 작업하는 설치미술 전업 작가다. 경남지역에 많지 않은 조각 전공 전업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조각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작가는 학창시절 다녔던 미술학원에서 알게 된 한 강사로부터 "조각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추천을 받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손이 큼지막해서 조각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점이 이유로 얘기됐지만, 실상은 수강생 유치 차원에서 던진 말이었다고 한다. "그때 회화를 추천받았다면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최 작가는 강사 추천을 기점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각에 빠져 있다. 대학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작업 삼매경이다.

▲ 최수환 작가 작업실 선반 위에 놓인 모형들. /최석환 기자
▲ 최수환 작가 작업실 선반 위에 놓인 모형들. /최석환 기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술가가 꿈이었어요. 그땐 디자인을 배웠었는데 저랑 잘 맞진 않더라고요. 입시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었죠. 그러던 중에 학원 선생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손이 크니까 조각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된 거예요. 해보니까 나쁘지 않았고 재미도 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미술에 흥미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 뒤로 재수해서 창원대 미술학과에 입학했어요. 하다 보니 지금까지 조각을 하게 됐네요."

그는 2006년에 학부 졸업장을 받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건 이듬해인 2007년. 독일의 예술가 그레고르 슈나이더를 좋아해서 오른 유학길이었다. 그래서 학교도 평소 동경해온 그레고르 슈나이더가 교수로 있던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로 갔다. 작가의 존재가 국가에 이어 학교 선택에까지 큰 영향을 준 것이다.

"나름대로 저만의 기준에서 봤을 때 '이 작품은 정말 완벽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어요. 그레고르 슈나이더의 작품이 그렇거든요. 그분만의 세계관이 있어요. 자신이 살던 집을 미술관에 그대로 옮겨와서 보여주는 그런 작업이 재밌더라고요. 그 작가를 정말 좋아해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했고, 가까이 있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같이 있어 보니까 정말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없어요. 자기밖에 몰라요. 남들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게 인상적이었어요."

▲ 최수환 작 '새이웃(2016)'. /최수환 작가
▲ 최수환 작 '새이웃(2016)'. /최수환 작가

최 작가는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곧장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에서 작품 연구도 하고, 작업도 하고, 이삿짐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8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독일에서 작가 인생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단체전에도 7차례 정도 참여했다.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 등 모든 게 달랐지만, 어렵더라도 인생의 한 번뿐인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독일에서 창문 모형을 쭉 빼놓은 작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나름 동네에서 갤러리도 운영하고 컬렉터로도 활동했던 분이 자신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첫 개인전을 열게 됐었죠.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에 독일에서 보낸 시간은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사실 당시엔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10번씩 짐을 쌌었거든요. '미술은 어차피 평생 할 건데, 굳이 여기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면서도 조금 더 있어 보자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했었어요. 인생의 한 번뿐인 유학이니까요."

작가는 6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지난 2016년 밀양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의 작업실은 농경지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에 자리한다. 주변에 가로등이 많지 않아 밤이 되면 어둑한 풍경만 눈에 들어온다. 그의 작업 특성상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실제 형상으로 만들어내려면 잘라내고 붙이는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라인더(grinder·물체를 자르는 데 사용되는 공구)가 아무리 큰 굉음을 내며 돌아가도 이 동네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가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인 셈이다. 이 동네에서 최 작가는 창원대 미술학과 출신 선후배 5명과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다. 모두 조각을 전공한 지역 미술인들이다. 최 작가는 올해도 이들과 같이 생활하며 이전처럼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계획이다. 작업을 많이 하는 게 올해의 목표다.

"일주일에 4~5일씩 밀양 작업실로 출퇴근하고 있어요. 예전에 살았던 재개발구역에 묶인 회원동 집과 관련된 내용 등 저의 삶과 경험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삶과 경험이 작업의 큰 줄기가 될 거예요. 코로나는 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거든요. 작가는 기다리는 사람이에요. 선택을 당하는 사람이죠. 올해는 드로잉을 많이 하고 모형을 많이 만들고 작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목표예요. 무조건 양이 질인 것 같아요. 뭘 하든지 간에 작년보다 더 많이 작업하고 싶어요."

▲ 밀양 대곡리 작업실에 있는 최수환 작가. <br /><br /> /최석환 기자
▲ 밀양 대곡리 작업실에 있는 최수환 작가. /최석환 기자

■ 작가의 작업노트

네모난 상자도 질감따라 주제 천차만별

예술이라는 건 자신이 선택한 매체로 얘기를 꺼내오는 작업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물감과 테크닉으로 생각하는 걸 번역해서 보여주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표와 음의 간격을 통해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런 것처럼 조각하는 사람은 재료와 형태 기술을 번역합니다. 저는 조각 형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각의 세계 자체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모난 상자를 만들더라도 돌을 깎아서 만든 것과 유리로 붙여서 만든 것은 성질이 다릅니다. 종이로 만든 건 여리여리하고 돌로 만든 상자는 묵직합니다. 그렇듯 모두가 다른 형태를 가진 거죠. 조형의 언어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런 것을 탐구하는 게 재밌습니다.

전체적인 작업은 모더니즘 쪽에 가깝습니다. 살면서 맞닥뜨린 경험을 작업 내용으로 가져와서 풀어내는 편입니다. 회원동에 살다 보니까 재개발지역 쪽에서 건물이 부서지고, 조폭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것을 작품 내용으로 가져와서 조형적인 것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오는 작업이 어려워서, 3일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응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최수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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