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연·한해원 학생 영상서 환경 문제 책임 돌리기 비판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 계기 청소년 연대 중요성 실감

'미래 세대가 말한다'는 기후위기 시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참여·제보를 기다립니다.

지구처럼 둥근 작은 공 하나가 화면에 등장한다. 공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통영'을 캐릭터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통영'은 처음에는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쓰레기와 무관심이 쌓이며 점점 피폐해져 간다. 물고기, 나무와 같은 친구도 잃었다.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로 상처가 깊다. 예전과 다른 '통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다", "어른들이 해결할 문제", "높은 분들이 풀어야 할 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지만, '통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과 해설이 이 영상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다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바빴죠. 그렇기 때문에 통영은 콕 집어서 지목합니다. 이 영상을 보는 당신! 통영을 구해주세요!"

차다연(18·동원고 2) 학생과 한해원(18·충렬여고 2) 학생이 함께 만든 3분 30초 남짓 영상 속 내용이다. 제목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 두 사람은 기후위기, 환경파괴를 둘러싼 사람들의 '책임 회피' 문제를 꼬집는다. 다연·해원 학생은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이하 통영RCE)이 마련한 '제13기 브릿지투더월드(BTW)'에 참여해 이번 영상을 만들게 됐다.

▲ 지구·통영을 상징하는 공이 청소년의 무관심 속 버려져 있음을 표현한 영상. /통영RCE
▲ 지구·통영을 상징하는 공이 청소년의 무관심 속 버려져 있음을 표현한 영상. /통영RCE

◇교과서 밖 진짜 기후위기 = BTW는 통영 청소년들의 지역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다. 2008년부터 매년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이 국내외를 발로 뛰며 이슈를 발굴하는 내용이었다. 탐방 중심 프로그램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청소년 스스로 이슈를 영상에 담아내는 형식으로 변경됐다. 영상의 주제가 바로 기후위기였다.

다연·해원 학생도 원래 기후위기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청소년이 생각하는 기후위기와 그 해결 방안'이 주제였는데요. 사실 기후위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수업에서 들어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상 제작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좀 더 깊게 생각해보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다연·해원 학생을 포함한 청소년 21명이 지난해 8월부터 6개월가량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들은 3차에 걸쳐 영상을 만들었다. 앞서 온라인·소규모 오프라인 교육이 11차례 진행돼 학생들은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배울 수 있었다. 1차는 '코로나19로 우리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2차는 '청소년과 기후위기', 3차는 '주위에서 찾아보는 기후위기, 도대체 왜 극복할 수 없을까?'가 주제였다. 청소년이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 24점이 결과물로 나왔다.

마지막에는 '2021, 우리 아직 늦지 않았어요'라는 제목으로 상영회도 열었다. 기후위기를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상은 지역민이 함께 볼 수 있었다. 다연·해원 학생의 영상처럼 어른들이 놓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영상은 유튜브 채널 '통영RCE세자트라숲'에서 볼 수 있다.

▲ 지구·통영을 상징하는 공이 청소년의 무관심 속 버려져 있음을 표현한 영상. /통영RCE
▲ 지구·통영을 상징하는 공이 청소년의 무관심 속 버려져 있음을 표현한 영상. /통영RCE

◇미래 터전, 어른에게만 기대는 게 옳을까 = 다연·해원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진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상에 관심이 있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분모였다. 다연 학생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해원 학생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를 보면서 한 번쯤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일상에서 발견한 풍경을 짧게나마 영상으로 찍어두기도 했다.

이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마지막 3차로 만든 영상이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고민이 깊었다. 아이디어는 다른 영상의 댓글을 읽으면서 얻게 됐다. "뭘 찍어야 할지 막막해 다른 영상을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그중 관광개발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서 죽어가는 북극곰 이야기를 다룬 뉴스 영상이 있었는데요. 댓글이 대부분 '진작에 나라에서 손을 썼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이런 사태가 일어날 동안 환경부는 뭘 한 거지?'라며 누군가를 탓하는 내용이었어요. 환경 문제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해원)

"저희가 기후위기에 관해 질문하면 학생들은 '어른들이 하는 일이지', 어른들은 '이런 거는 높은 분들이나 하는 일이지'라고 답했어요. '그러면 기후위기라는 중대한 일은 누가 해결해야 하지?' 이런 고민이 들었고 지금 상황을 고쳐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우리 통영도 지구도 누군가가 아닌 내가 먼저 책임지고 나서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다연)

기후위기 관련 영상을 만든 차다연(18·동원고 2, 오른쪽) 학생과 한해원(18·충렬여고 2) 학생이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에서 '기후변화와 대응', '해양생태계 보존'이라는 홍보물을 들고 있다. /이동욱 기자
기후위기 관련 영상을 만든 차다연(18·동원고 2, 오른쪽) 학생과 한해원(18·충렬여고 2) 학생이 통영시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에서 '기후변화와 대응', '해양생태계 보존'이라는 홍보물을 들고 있다. /이동욱 기자

◇세상을 바꾸는 시도 = 영상 한 편을 완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중에는 학교에 가고, 주말마다 나와서 촬영·편집 기술을 익혔다. 그 와중에 학교 시험도 챙겨 편집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두 학생은 입 모아 말했다. "그래도 수업이든 촬영이든 할 때마다 재미가 있었어요. 평소보다 더 자주 연락하게 됐고, 사실 의견이 안 맞아 싸우기도 했는데요.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 서로 의견을 맞춰가는 법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영상에 관심이 많은 다연·해원 학생은 영상을 배울 수 있다는 BTW 13기 모집 공고문을 보고 끌렸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매력적인 문구가 공고문에 적혀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프로젝트'. 이 문구를 보고 '과연 청소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걸 해결하려면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했다.

통영RCE 교육사업팀 서보명 PD는 "기후위기가 핵심어였지만, 청소년들이 환경뿐만 아니라 불평등, 사회경제적인 문제까지 영상에 풀어냈다. 청소년에게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기보다는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배움이 있었다"며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자율적으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의 힘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다연·해원 학생은 앞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4·3 사건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나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문제를 다루거나 청소년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도 찍어볼 생각이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영상을 만들어본 이번 경험은 또래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기후위기와 같은 중대한 문제에 학생들이 나서는 것을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학생이면 공부나 제대로 할 것이지'라는 말로 못 미더워하는 어른들이 아직 많아요. 하지만 학생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어른들이 놓치고 있던 일도 찾아내고 있어요. 무의미한 말보다 학생들을 믿고 응원하며 함께 노력해줬으면 해요.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그러다 보면 기후위기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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