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 추억 품은 남해각
전시관·전망대·열린공간 조성…옛 추억 활용한 영상·사진 눈길
어부 삶 담은 스페이스 미조
지역 재료 활용한 식당·상점 등 어업 활성화에 초점 맞춰 꾸며

이 정도면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나 부산 영도 끄티 같은 공간들과 비교할만한 멋진 복합문화공간이 되겠다 싶다.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남해각과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스페이스 미조. 둘 다 자칫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곳으로 남해군이 문화예술을 입혀 유휴공간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재생사업과 달리 어찌 보면 모험일 수도 있는 공간 기획자 의도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남해군의 발상 전환이 돋보인다.

◇남해의 시작 남해각

이달 말 개관 준비를 거의 마친 남해각은 하동에서 남해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보이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건물이다. 1975년에 완공됐는데, 식당과 노래방, 숙박 시설로 운영되던 곳이다. 남해대교와 함께 오랫동안 지역 명물 노릇을 했다. 애초 사업 이름은 남해대교 레인보우 전망대 조성사업이다. 남해군은 사업을 진행하며 우선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담긴 이야기를 먼저 주목했다.

남해대교 개통은 남해군으로서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다리로 남해가 처음으로 육지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1968년 공사를 시작해 1973년에 완공했다. 동양 최초, 최장 현수교라는 기록도 지니고 있다. 남해대교 개통으로 남해군에 불어닥친 사회 경제적 변화는 어마어마했다. 예를 들어 남해섬 제일 안쪽에 있던 상주해수욕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제2 해운대로 불릴 정도로 남해군이 전국적인 관광지가 됐다. 특히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남해 지역민 중에는 남해각이나 남해대교 앞에서 사진 한 번 안 찍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무수한 추억이 있었을 텐데, 이런 이야기와 자료를 모아 <남해대교 레인보우 전망대 조성사업 이야기 자원 수집 보고서>란 책자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를 남해각 공간을 구성하는 데 활용했다.

▲ 남해각 지하 1층 기획전시실. 남해군이 수집한 이야기를 토대로 작가 30명이 작업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서후 기자
▲ 남해각 지하 1층 기획전시실. 남해군이 수집한 이야기를 토대로 작가 30명이 작업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서후 기자
▲ 남해각 전경. /이서후 기자
▲ 남해각 전경. /이서후 기자

새로 구성된 남해각은 겉으로 보면 옛날 그대로 같다. 하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먼저 식당 공간이던 1층은 상설 전시관이다. 남해군이 모은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시각적인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부부인 서현숙, 신병윤 어르신이 1975년 휴가차 한국을 찾았을 때 남해대교를 찍은 사진이 있다. 바로 옆에 지난해 두 분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로 다시 찍은 사진을 나란해 배치해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도록 구성했다. 또 수집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상도 볼 수 있는데, 제목이 '빨간 문'이다. 남해 지역민에게 남해대교의 빨간 주교가 마치 고향집 빨간 대문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멀리 다녀오는 길에 남해대교를 지나면 아, 이제 집에 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는데, 그런 감정을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표현했다. 원래 노래방이던 지하 공간은 기획전시실이 됐다. 첫 전시는 이미 준비가 끝났는데, '남해각 일상의 역사'란 제목으로 작가 30명이 남해군이 수집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작업한 소품들을 모았다. 음악가 루시드폴의 작품도 있다. 고향이 남해라고 한다.

숙박 시설이 있던 2층은 구체적인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열린 공간이다. 자치단체 사업으로 이렇게 자유로운 혹은 용도가 명확하지 않은 공간을 두기가 쉽지 않은데, 이 역시 남해군의 열린 행정이 만들어낸 가능성이다. 그리고 옥상은 그야말로 훌륭한 전망대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해각 옆 횟집 자리는 건물을 허물고 전망형 음악 공연장을 꾸미고 있다. 그리고 대교 아래 노량마을에서 남해각으로 진입하기 위한 엘리베이터 타워도 만들 계획이다. 최종적으로는 남해대교 자체도 도보교로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남해대교와 남해각, 노량마을과 주변 해안으로 이어지는 큰 공원이 하나 생기는 셈이다.

▲ 남해각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이서후 기자
▲ 남해각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이서후 기자

◇남해 어업을 위한 복합공간

역시 개관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인 스페이스 미조는 미조항 한편에 있던 옛 냉동창고를 활용한 공간이다. 정식명칭은 미조항 간이역 조성사업. 2018년도부터 건축가를 포함한 공간 기획팀이 오랜 논의를 거쳐 공간을 구성했다.

건물 자체는 일반건물 4층 높이다. 하지만, 냉동창고였기에 내부가 독특하다. 건물을 고치면서도 냉동창고 열을 내리는 데 필요한 열교환기는 일부러 그대로 뒀다. 원래 용도를 상징하는 의미와 함께 마치 설치 미술 작품 같은 노릇도 한다.

미조항을 바라보는 건물 전면은 낡은 모습 그대로 뒀다. 주변 풍경과 조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미조항을 오가는 어민들과 이질감을 줄이려는 뜻이다. 대신 건물 뒤편을 주 출입구로 삼아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 중이다.

▲ 미조항을 오가는 어민들과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옛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스페이스 미조 건물 전면.   /남해군
▲ 미조항을 오가는 어민들과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옛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스페이스 미조 건물 전면. /남해군

같은 문화예술복합공간이지만 남해각이 관광과 역사에 중심을 뒀다면, 스페이스 미조는 어업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구성 중이다. 내부에 설치되는 모든 공간에는 '어부'란 이름이 붙는다.

구체적으로 '어부 키친'은 지역 재료를 사용하는 식당으로, '어부 마켓'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파는 상업 공간이다. 또 '어부 스테이'는 숙박 공간이데, 단기 숙박과 장기 숙박으로 나뉜다. 특히 장기 숙박 공간에는 문화예술가들이 머무를 예정이다. 가능하면 산업에 관련된 이들을 받아서 어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작업들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예술가들이 사용할 공유 사무실 '어부 스튜디오'도 마련했고, 이 외에도 어업 문화관 등 전시, 공연 공간도 들어선다. 무엇보다 건물 내부로 구석구석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또, 공간 바로 앞이 미조항인데, 치열한 삶의 현장이 눈앞에서 펼쳐지기에 창작자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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