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아동학대, 소설 〈제인 에어〉 닮아
여전한 가해·피해 끊기 모두가 나서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존재만으로도 귀중한 생명들이 가족에게 버림받고 그늘진 곳에서 떨다가 스러지는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섬뜩한 소식을 듣고는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가 불현듯 떠올랐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제인'. 외숙모댁에 입양되나, 모진 핍박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자라는 그녀의 기구한 삶은 눈물겹다. 사촌 오빠의 갖은 횡포와 언니들의 오만한 무관심, 외숙모의 증오, 심지어 집안의 하인들조차 '제인'을 군식구 취급하며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모멸감,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절망감,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참담함으로 가슴이 터질 듯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고 격분해서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외숙모는 오빠를 꾸짖기는커녕 제인을 으르고 타박하면서 '붉은 방'에 가둬버린다. 진홍빛 커튼이 드리워진 그 방은 제인의 외삼촌이 임종을 맞은 뒤 폐쇄된 방으로, 춥고 음산한 곳이었다.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질려 울부짖던 제인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다행히 신속하게 달려온 약제사의 응급처치를 받고 깨어났고, 제인의 하소연을 들은 약제사는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보내자고 권고한다. 비록 교칙이 혹독하고 난방은 물론, 급식 사정도 좋지 않아 상한 음식물을 제공하는 등 모든 것이 열악한 자선 학교이지만, 무엇보다 학대의 늪에서 구출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겼던 것이다. 외숙모는 앓던 이를 뽑아버리듯 아주 반색하며 "제인은 버릇없고 성격이 나쁜 아이이니 엄하게 훈육하라"고 당부한다. 이에 선입견을 품게 된 학교 이사장은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제인을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고는 함께 놀지 말라고 경고한다. 졸지에 억울한 누명을 쓴 제인은 숨이 막히고 맥이 멎을 듯한 절망과 자괴감으로 무너진다. 비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해 쓰러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헬렌이라는 친구와 템플 선생님이었다.

"자기 양심이 자기 자신을 정당하다고 인정한다면 하늘은 결백성을 알아주고 지켜준다"고 했던가. 제인은 템플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고함이 밝혀지고 열심히 분발한 결과 우등생으로 성장해 8년 뒤 이 학교 선생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자신의 인격 형성에 좋은 영향을 주던 헬렌이 결핵으로 요절하고 템플 선생님마저 퇴임하자 더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손필드라는 한적한 곳으로 떠난다. 그곳의 가정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손필드 저택의 주인 로체스터는 첫 결혼에 실패한 중년의 독신남이었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그는 제인의 순수하고 이지적인 면모에 이끌리게 되고, 제인도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대하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 나머지 서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뜻밖의 불미스러운 사고로 로체스터는 눈을 잃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나 제인은 그런 그를 기꺼이 받아들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한편, 외숙모댁은 우환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고 곤경에 빠진다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저 '붉은 방'에 갇혀 떨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세속적 의미의 운명이란 예나 지금이나 가지지 못한 자와 이미 잃은 자에게 왜 그렇게 그악하고 무자비한 것인지…. 아동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침해받지 않도록 정부와 지역사회 모두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