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령·엄문섭·이병규·조승현
진해역 문화 공간 직접 만들고
주민 소통 프로젝트 발굴 결실
"지역 청년 연결망 많아지기를"

도시재생 하면 주민 주도, 공동체, 문화예술, 창업 등이 핵심어로 거론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청년'이다. 청년들이 오래된 동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주민들과 함께 지역 경제를 꽃피우는 사례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주령(26)·엄문섭(29)·이병규(27)·조승현(25) 씨 또한 도시재생이 진행되는 동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성장을 꿈꾸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덕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고향에 있던 4명은 도시재생 지역에서 만났고, 지역을 위해 무언가 해보자는 마음을 모았다. 첫 무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 중인 창원시 진해구 충무지구였다. 충무지구 앵커시설이자 현장지원센터인 '보태가'(진해역 앞·중원로 89)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왼쪽부터 조승현, 김주령, 이병규, 엄문섭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왼쪽부터 조승현, 김주령, 이병규, 엄문섭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인연의 시작

문섭·승현·주령 씨는 진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병규 씨는 지금은 창원에 살지만, 마산이 고향이다. 네 사람은 충무지구 '청년시점'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었다. '청년시점'은 청년의 시각에서 지역사회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해결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청년 40명 정도가 커뮤니티, 청년창업, 문화예술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활동했다. 지난해 5월 말 포럼 이후 7월부터 12월까지 5~6개월가량 활동이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 진해역 일원에서 펼쳐진 '문화페스타, 문화를 만나 시간을 잇다'는 마지막 결실이었다. 

문섭 씨는 2019년부터 교육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온 1인 기업 운영자이기도 하다. 수평적 동반자로 목표 달성을 돕는 일종의 상담 서비스다. 병규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뉴질랜드, 인도, 캐나다, 영국 등에서 지내다 지난해 창원으로 돌아와 '웨어에버(Wearever)'를 창업했다. 패션디자인이라는 대학 전공을 살려 버려진 의류를 활용한 아트워크, 컵 받침대와 같은 소품 제작 등을 진행 중이다. 경남도 '청년 지역창작자(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문섭·승현·주령 씨는 진해 청년단체인 '청진기'를 통해 '청년시점'에 참여하게 됐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승현·주령 씨는 고향에 와서 무엇을 해볼지 함께 고민하다가 대외활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충무지구(충무·중앙·여좌동 일원 23만 ㎡)는 초등학생 문섭 씨가 진해 해양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굳이 창원 시내로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이곳 활기가 넘쳤으나 지금은 침체한 상황이다. 근대건축 재정비, 시민 문화공간과 청년 창업 인프라 조성 등을 내용으로 이 일대에서 도시재생이 추진되는 까닭이다.

▲ 2  창원시 진해 충무지구 '청년시점' 문화예술 분과 활동으로 분주한 청년들. /이병규
▲ 2 창원시 진해 충무지구 '청년시점' 문화예술 분과 활동으로 분주한 청년들. /이병규

◇주민과 함께

각자 해오던 일은 달랐지만, 이들은 '청년시점'에서 어우러졌다. 문섭·병규 씨는 문화예술 분과원, 주령 씨는 커뮤니티 분과장, 승현 씨는 청년창업·커뮤니티 분과원이었다.

이 중 문화예술 분과 '새순'(new soon·곧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의미)은 진해역 내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지난해 11월 '문화페스타'에서 선보였다. 병규 씨가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진해는 청년 이탈률이 높은데, 뿔뿔이 흩어졌던 청년이 모여 이 문제와 해결책을 생각하고, 오히려 진해를 한 단계 발전시킬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컸어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전시회를 기획하는 데 머리를 싸맸죠."

이후 문화예술 분과는 사진·홍보·설치미술 등 3개 팀으로 나뉘어 주민 인터뷰, 사진 촬영, 전시 등을 진행했다. 특히 진해역장실은 할머니·할아버지방이라는 개념으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두면서 꾸몄다. 공으로 가득 채운 '볼풀(ball pool)' 방은 아이들이 놀기에 알맞았고, 또 다른 방에서는 주민들이 나뭇가지에 털실을 감는 등 직접 참여하면서 작품을 함께 만들어나갔다. 문섭 씨에게는 주민들과 함께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았다. "청년들의 아이디어였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을지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인생사진을 남기는 분도 많았고 함께 즐길 수 있었어요."

◇공동체를 고민하다

커뮤니티 분과 '취미연구소'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개념을 정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주령 씨는 "커뮤니티 정의에만 회의를 3~4번 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어요. 가운데 따뜻한 불을 놓고 둘러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것?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요.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혹은 그런 공간'이라고 정의를 내렸어요."

이어 커뮤니티 분과는 충무지구에서 '커뮤니티를 일궈나갈 방법'을 고민했다. 2명 이상이면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관해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그중 도자기 만들기와 충무지구에서 인생사진 찍기를 택했다. "처음에 말랑말랑한 흙이 서툰 우리의 모습이라면, 예쁘게 다진 흙이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지면 엄청나게 단단한 도자기가 되어 나오잖아요? 이건 무려 천년만년을 가죠. 여기에 우리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 도자기를 만든 과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죠."

충무지구에서 인생사진 찍기는 수많은 장소 가운데 5곳을 골라 펼쳐졌다. 비록 낯선 친구들이지만, 함께 재미있는 자세로 익숙한 사진 찍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청년창업 분과 '청년고백'(Go back·떠났던 청년들 되돌아오라는 뜻)은 애초 창원과 김해 청년 창업가를 초청해 진해역 광장에서 직업 박람회와 같은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재유행으로 청년 창업가 인터뷰와 홍보물 제작으로 대체하게 됐다. 승현 씨는 결과물에서 성취감을 맛봤다. "진해에서도 청년들이 충분히 창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진해에도 인프라가 있고, 지역 주민들과 청년 창업가들이 소통하고 서로 열정을 응원하며 도와주는 그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어요."

▲ 창원 진해역 내 전시. 역장실을 할머니·할아버지방 콘셉트로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채웠다./이병규
▲ 창원 진해역 내 전시. 역장실을 할머니·할아버지방 콘셉트로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채웠다. /이병규

◇지역 청년 연결망 절실

이들은 "인터뷰는 4명이 하지만, '청년시점'에 함께한 청년 모두 능력자였다"며 자신들을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이 크지는 않겠지만,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이들은 청년 혁신가로의 성장을 돕는 '진해혁신학교 크랩(Creative LAB)' 1기로도 나란히 참여했다. 광고 감독, 문화평론가, 도시재생 전문가, 창업지원센터 면접관 등을 만날 수 있는 과정이었는데, 올해도 함께할 생각이다. 지역에 머물러 있으니 현실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작년에 진해에서 멋진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서울, 부산, 대구 등 큰 도시가 아니어도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단지 이들을 이어줄 네트워크가 없으니까 대도시로 갔던 거구나 싶어요. 청년 네트워크가 잘 형성된다면, 창업도 활성화하고 어디에 있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령 씨)

"청년들이 지역을 벗어나는 이유는 비수도권 도시의 창업 기회나 인프라가 서울이나 수도권 도시만큼 구성돼 있지 않아서라고 봐요. 자치단체가 발벗고 나서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청년이 떠나는 빈도는 줄어들 것 같아요. 청년 스스로 이 도시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고요." (병규 씨)

"최근 스터디 주제였는데, 청년이 지역을 버린 게 아니라 지역이 청년을 내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정 직종만 취업이 잘되고, 많은 직종에서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창원에는 일자리가 없다고 느꼈어요. 지역이 서울보다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지역에 있는 청년들도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어요." (문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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