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속에서도 탱고와 클래식 접목
탄생 100주년 올해 음악여행 기대돼

"나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둘로 나뉘었다. 하이드일 때는 탱고를, 지킬 박사일 때는 심포니를 작곡한다."

이 말은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a·1921~1992)가 '누에보 탕고'(새로운 탱고)의 혁명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피아졸라가 활동하던 1900년대 중반만 해도 민속 음악과 클래식을 양손에 쥐겠다는 것은 마치 한복과 턱시도를 같이 입겠다는 말과 같이 들렸을 것이다. 탱고는 북적거리는 선술집에서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었을 뿐, 콘서트홀에서 순수한 감상을 위해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피아졸라는 '발을 위한 탱고'를 '귀를 위한 탱고'로 바꾸고 싶어 했다.

피아졸라는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에서 태어났지만, 네 살 때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어 십 대 시절을 뉴욕의 거친 이민자들 틈에서 자라났다. 반도네온이라는 악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뒷골목 건달이 되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아르헨티나로 와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던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이 선술집의 춤곡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을 넘어서고 싶어 했다. 이미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의 현대적인 음악을 체험했고, 거슈윈이 재즈와 클래식을 같이 녹여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33세 때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유학길에 오르게 된 그는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라는 유명한 스승을 만난다. 나디아는 피아졸라가 연주하는 탱고 음악을 들어보고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피아졸라야! 절대로 그만두지 말게!" 피아졸라는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듯 그때부터 맹렬하게 자신만의 탱고 음악을 계발해나갔다.

피아졸라는 탱고에 재즈와 클래식을 접목하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5중주, 6중주, 7중주, 9중주 등 다양한 편성을 시도했고, 타악기, 하프, 플루트, 비브라폰, 첼레스타, 전자악기에 이르는 낯선 악기를 탱고에 도입했다. 대통령보다도, 축구보다도, 탱고를 더 사랑한다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탱고 음악을 실험한다는 건 주먹이 오고 갈 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그건 전쟁이었어!"라고 피아졸라는 회상했다. 전통주의자들이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지만, 피아졸라는 굽히지 않았다. <아디오스 노니노> <미친 사람을 위한 발라드> <더블 A의 비가> <반도네온 협주곡> 등을 성공시키면서 결국 피아졸라는 자신이 생각한 '누에보 탕고'를 전 세계에 알렸다.

피아졸라의 음악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컸다. 특히 현대 음악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클래식 연주자들, 바이올린의 기돈 크레머를 비롯하여 첼로의 요요마, 피아노의 다니엘 바렌보임 등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속속 탱고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샐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 같은 영화에서도 피아졸라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수많은 드라마와 CF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제 피아졸라는 전통 탱고 음악계와 클래식 음악계에서 모두 인정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했다.

전통과 혁신의 경계에 서서, 온몸으로 변화를 받아낸 사람, 올해는 그 피아졸라가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다.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그의 음악이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가까운 연주장을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음악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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