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작가회의 작가상에 표성배 시인·박래여 소설가
시 '계약직'현장성·소설 '푸른 발에…'생명성 호평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회장 박덕선)가 운영하는 제7회 경남작가상 수상자로 운문에 표성배 시인이, 산문에 박래여 소설가가 선정됐다. 매년 초 선정하는 경남작가상은 경남작가회의가 펴내는 회지 <경남작가> 중 그 전해 발간된 것에 담긴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은 수상자가 한 명이었는데, 이번에는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 두 명을 선정했다.

▲ 표성배 시인

◇현장이 담긴 시의 힘

운문 분야 예심에 올라온 작품은 표성배 '계약직', 이복규 '기억 혹은 거짓', 김석봉 '마스크를 빨면서', 원종태 '지리산 고운동', 정선호 '늦가을 편지', 김영곤 '어머니의 손목시계', 김진희 '가을 주유소', 이규석 '계약직' 8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중에 표성배 시인의 '계약직'을 수상작품으로 뽑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마산역 신호등 앞에서였다 초록이 아니라 붉은 신호등이었다 차들은 뻥 뚫린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몇 달째 인력에서 일한다고 올해 남은 몇 달은 그렇게 보낼 것 같다며 웃었다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일 년짜리 목숨이라도 계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시 아냐고, 계약직으로 일하다 보면 일 년이 이 년이 될지 삼 년이 될지, 지난 일 년은 너무 빨라 전화도 못 했다며 미안해했다 그래, 그려, 맞아, 고개만 끄덕이는 나에게 어차피 종신 계약도 계약직 아니냐고 했다 태어나는 순간 계약서에 서명하고 사는 것 아니냐고, 일찍 품을 떠난 아들과 벌써 성년이 된 아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오십이라고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아직 신호등은 바뀌지 않고, 쌩쌩 달리는 차 소리에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계약직' 전문)

표성배 시인은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생산 현장에서 또 일상 속에서 건져 낸 시로 수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낸 대표적인 노동시인이다. 노동자가 쓴 글이 많아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선배님들 말을 실천하며 살았고, 좋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는 몰라도 이제는 어떤 시를 써야 하는지는 안다는 시인에게 이번 수상은 또 다른 채찍질이 될 것이다.

"그는 노동자고 현장이며, 뜨거우나 냉철하고, 사소하나 거대하다. 삶과 작품의 일치성, 그것이 그의 힘이다. 그는 삶의 현장, 지금을 담담하나 뜨겁게 노래한다. 그 견고한 세계 위에서 노래하고 분노하고 포효하는 그의 작품세계도 심사 기준에 참여시켰음을 인정한다." (박덕선 시인 심사평 중에서)

▲ 박래여 소설가

◇자연이 북돋은 문장

산문 분야에서는 시를 뺀 소설, 수필, 칼럼 등 22편이 심사 대상이었다. 이 중 1차로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칼럼과 평론, 그리고 단편소설 등 3편을 추려냈고, 마지막으로 박래여 작가의 단편소설 '푸른 발에 걸린 삽화'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두고 원한과 업보, 운명 등 전통적인 요소와 토속적 세계를 짙게 드러내고 있다고 평했다.

"채송화야, 이제 네 업이 다 풀렸나 보다. 사실 그 집안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이 너를 붙잡고 안 놓아준 탓에 아팠다. 이제 너의 수호신장이 튼튼해졌다는 뜻이다. 너의 수호신장이 관세음보살님이라니 어찌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겠나. 이제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이니 시댁으로 들어갈 일만 있을 게다. 시부모님께 잘하고 남편에게도 잘해야지. 집에 가면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마라. 첫 아들은 용왕님께 바쳐야 집안에 우환이 없을 게야. 잊지 마라. 또한, 해마다 도화강에 용신제를 지내야 한다. 꼭 명심해야 하느니라."('푸른 발에 걸린 삽화' 중에서)

박래여 소설가는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의령군 칠곡면 자굴산 자락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산 지 30여 년. 소설가로 등단 후 첫 단행본을 <푸름살이>란 수필집으로 시작할 만큼 글쓰는 일을 일상으로 여기는 작가다. 자연 속에서 살며 묵혀 낸 삶의 묵직한 덩어리들이 그의 작품에 담겼다. 이번 수상 작품도 마찬가지다.

"비극이 파멸과 좌절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고 생명을 이어가는 한 줄기 빛을 제공하는 것이다. 박래여 소설이 가지는 깊이와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지점이다."(하아무 소설가 심사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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