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 등 대한민국 문화 잇단 성과
열등감 버리니 비로소 선진국민 된 듯

6살 남자 아이가 항구를 사랑한 남자의 인생을 부른다. 9살 여자 아이가 한 많은 대동강의 안부를 묻는다. 한국전쟁 통에 단장의 미아리 고개로 끌려간 여보를 애타게 부르는 앳된 소녀의 절규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요즘, 트로트 맛에 빠진 나의 모습이다. ♬아이야 뛰지 마라! 배가 꺼질까봐 뛰지도 못했던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저 아이가 어떻게 알까? 돈이 없어 매를 맞던 빈대떡 신사의 처지는커녕 빈대떡이라도 한번 먹어 봤을까? 이런 평론가적인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경험으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트로트 마니아였다. ♬발길을 돌리려고 바람 부는 대로 걷는 기분은 몰라도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진정 난 몰랐었네'를 입에 달고 살았고, 엄마의 애창곡 '찔레꽃'은 동네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을 피울 때면 늘 등장하던 단골메뉴였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 초가삼간을 그리워하기엔 일러도 너무 이른 내 나이 예닐곱 살. 노랫말의 의미는 몰라도 구성진 트로트 가락의 흥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트로트를 좋아했던 내가 트로트를 무시하게 된 건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중2 무렵부터였다. 내가 트로트를 무시한 게 아니라 트로트를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1990년 중후반부터 등장한 아이돌 그룹의 현란한 랩과 댄스, R&B 뮤직의 인기 속에 나 홀로 뽕짝을 부르는 10대를 찾아 볼 수 없을 지경. 소풍 장기자랑에서조차 트로트를 부르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했다. 트로트는 뭔가 후지고 품위가 떨어진다는 분위기는 20, 30대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졌다. 영어인지 국어인지 모르는 불명확한 국적의 랩과 하룻밤의 쿨한 연애를 다룬 노랫말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하는 트로트의 가사는 시대에 맞지 않게 청승맞아 보였다. 고작해야 회식할 때 만취한 상태로 노래방에서 악을 쓰며 대미를 장식했던 트로트 메들리가 존재했을 뿐. 20, 30대에 트로트를 부른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 내가 트로트를 다시 부르기 시작한 건 모 방송국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어디 나뿐이랴. 지금 대한민국은 트로트 전성시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요무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트로트가 TV 채널을 장악한 대세가 된 것이다. 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를 부르고, 트로트 왕자 임영웅이 최고의 광고모델이 된 지금,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장윤정의 '어머나'와 박현빈의 '곤드레만드레'가 나왔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 어느 한 가수의 인기가 아닌 트로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랄까.

이제, 나도 더 이상 트로트를 부르는 게 쪽팔리지 않다. 지겨울 정도로 쏟아지는 트로트 열풍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의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를 잡은 BTS를 보면서 느낀 자랑스러움. 한국영화가 오스카상 후보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이유를 묻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오스카 영화제는 고작 로컬(지역) 영화제일 뿐이지 않느냐는 봉준호 감독의 당당한 되물음에서 느낀 카타르시스.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는 K방역까지. 대한민국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문화의 자신감이 생기니 트로트에 대한 열등감도 사라졌다. 팝송이나 R&B를 부르면 있어 보이고, 트로트를 부르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은 더 이상 없다. 이제, 비로소 선진국민이 된 듯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