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고위험 지역 경남 5곳…지자체 재정자립도 천차만별
고향 기부금 내는 법안 계류…일본·미국·호주·독일 등 제도 마련
지방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도시는 물론 특히 농어촌지역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 결과 전국 시군구 46%가 소멸 위험에 놓여 있다. 이 중 92%가 비수도권이다. 이는 한 지역의 젊은 여성 인구를 예순다섯 살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인 '지방소멸 위험지수'를 따져본 결과다.
경남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경남 12개 시군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인구 자연감소 현상은 가속하고, 특히 농어촌지역의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기초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방소멸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할 것인가? 21대 국회 들어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법안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이 중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도 속도를 더디게 하는 방안 중 하나가 일명 '고향세' 도입이다. 고향세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확충을 위해 고향에 기부금을 내면 세제 혜택을 주는 '고향 사랑 기부제도'를 줄여 말하는 용어다. 수년 전부터 국회에 관련 법률안이 제출돼 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설 명절인데도 코로나19 상황에 고향을 가지 못하는 상황. 고향세가 다시 관심이다.
◇고향세 도입 필요한가 = 고향세란 재정이 어려운 자치단체에 그 지역 출신자 또는 인연이 있는 사람이 기부하는 금전을 말한다. 기부하는 사람에게는 세금 혜택을 준다. 고향세를 내면 이듬해 연말정산에서 소득세를 돌려주는 등 국세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논의 중이다. 이렇게 해서 지방과 농어촌의 재정을 확보해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을 완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령화 속도가 급격한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곳이 많다. 일본은 2008년부터 후루사토세(고향세)를 도입했다. 자신의 고향이나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기부금을 내면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 또 기부금을 받은 자치단체에서는 답례로 쌀을 비롯해 쇠고기와 전복, 상어지느러미까지 다양한 지역 특산물을 기부자에게 제공한다. 모금 실적 추이를 보면, 고향세를 도입한 첫해에는 기부액이 81억 엔(831억 원)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응원성 기부금이 증가했다. 이후 2015~2016년 모금액이 급증했다. 제도 시행 10년이 지난 2018년에는 실적이 5127억 엔(약 5조 2000억 원)에 달했다. 63배가 증가한 것이다. 기부 건수는 2322만 건으로 430배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과 캐나다, 호주, 독일, 네덜란드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기부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향세법 국회 통과 가능하나 = 고향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거론된 건 17대 대선 당시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했다.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고향세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고향세 도입을 채택했고,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고향세 제도 관련 법안은 무더기로 발의됐지만, 20대 국회에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 출범 후 우리나라는 지방재정 권한 강화 방안으로 입법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향 납세제도 도입 요구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인사가 낸 기부금을 지방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발의된 '고향 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안'은 모두 5건이다.
법안들은 열악한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기부금 접수·모집을 허용하는 '고향 사랑 기부금' 제도를 도입하자는 내용은 같다. 고향 자치단체에 금품을 기부하면 세액 감면과 답례품(지역 특산품)으로 돌려받는 것. 이와 함께 '기부금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대상에 '고향 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을 추가하려는 것이다. 다만, 세액 이전 기부, 기부자 세액공제, 지도·감독, 위반 사실 공표의 규정에 차이가 났다.
논의 끝에 지난해 9월 한병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향 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정안(대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하지만, 11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이 법안은 전체 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법안심사 2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법사위 여당 의원들은 법안 통과를 주장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했다.
윤한홍 의원(국민의힘·창원 마산회원)은 당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이게 상당히 위험한 법률이다. 고향 사랑 기부금을 모집하는 것은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일종의 증세다"라면서 "자치단체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다. 단체장이 이런 기부금 모집한다고 그러면 피해 갈 재간이 없다. 단체장이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놓으면 기업들 돈 뜯겨서 기업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은 답례품 지급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행안위에서 충분히 협의가 됐고, 서울 출신 위원도 찬성한 그런 법이라서 저희가 굳이 그렇게 체계·자구의 문제를 넘어선 문제를 제기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라고 했지만, 국민의힘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법사위 2소위에서 법안을 언제 다시 심의할지는 모를 일이다.
◇고향세법 통과 위한 노력은 =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후 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회장 홍성열 충북 증평군수)는 '고향세법' 제정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국회에 전달했다. 협의회는 건의문에서 "고향세법은 농어촌지역만 살리는 법안이 아니라 지방재정의 건전화와 지방분권 촉진, 균형발전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국가 생존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홍 회장은 "법안이 논의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는데 그동안 농어촌지역은 소멸이란 극단적인 시련에 맞닥뜨렸다"면서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국회가 초당적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것"을 촉구했다.
광역의회의 법안 통과 요구는 높다. 전북도의회에 이어 경남도의회는 2019년 5월 고향세 제도 시행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경남도의 출향인은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들이 소득세의 10%를 기부하면 경남에 연간 320억 원의 국세가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승제 지역재생연구소장(경상대학교 행정학과 강사)은 "지방소멸의 방지책으로 귀농·귀촌을 요구하는데 도시민이 생활거점을 옮기면서까지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출향인들 중에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고향세 제도를 통해 큰 부담 없이 지방소멸 극복 효과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법사위에서 지적된 답례품 관련 문제점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 해석을 해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한 상태라 법률안을 국회가 빨리 통과시켜 지역균형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