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눈으로 만든 펭귄 보면서 즐거워
힘겨운 일상이라도 작은 활력소 찾기를

서울로 향하는 해상 관문이라 역사의 현장으로 자주 등장하는 강화도의 상징 중 하나는 전등사다. 381년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유서 깊은 이 사찰 대웅전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다. 처마 네 귀퉁이를 떠받치고 있는 옷을 입지 않은 나부(裸婦) 넷. 중건 당시 사하촌 꽃뱀 주모의 거짓 사랑에 속아 호주머니를 털렸던 도편수가 그 주모의 옷을 벗기고 영원히 지붕을 떠받치게 하는 걸로 복수를 꾀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지엄한 사찰 그것도 본부 처마 밑에 벌거벗은 여인이 넷이나 앉아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당시 건축주의 동의나 최소한 묵인이 있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 테니 그 넉넉함과 여유가 좋다.

경북 울진군 불영계곡에 있는 불영사의 금당 역시 대웅전인데 이곳에도 여느 사찰 건물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대웅전 계단 양옆으로 머리와 앞발 등 몸통의 일부분만 내민 거북이 두 마리가 건물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듯하다. 두 번의 소실, 창건 설화와 어우러져 주변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거북이의 드러나지 않은 신체 부위를 시공사는 어떻게 처리했을까? 굳이 땅을 파 확인해 보았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저 거북이들은 언제면 저 짐을 벗을 수 있을까?

대구 팔공산은 대도시 근처 산으로는 드물게 1200m에 육박하는 높은 산이다. 동봉에는 '팔공산 동봉 석조 약사여래입상'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단 6m 높이의 불상이 있다. 뒤로 물러설 공간이 없어 치켜 볼 수밖에 없고 또 북서쪽을 향하고 있으니 항상 뒤가 어두워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신비감은 고사하고 위엄의 기미도 없다. 12시 5분 전을 가리키는 기운 고개, 확연히 오른쪽이 높아 삐딱한 어깨, 머리에 짓눌려 실종된 목, 불거진 광대뼈, 펑퍼짐한 코, 처진 입꼬리, 영락없는 단발머리. 심술궂은 소녀의 뾰로통한 얼굴 그 자체다. 아니면 동네 아줌마. 그것도 생김새나 인상이 보통에 좀 못 미치는. 굳이 이런 모습으로 이 높은 곳(1176m)에 이렇게 큰 불상을 만들게 된 사연을 담은 그 흔한 전설마저 없으니 더 생뚱맞다. 여하튼 보는 순간 머금은 음식을 뿜지 않으면 다행이다.

1월 마지막 날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높은 계방산(1577m)을 다녀왔다. 눈꽃과 상고대 그리고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밭의 기대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설악산 대청봉을 포함해 눈 덮인 백두대간 준령의 X-ray 사진 같은 모습은 남지 싶다. 운두령에서 시작한 등산길은 볕받이라 눈이 적었지만, 노동계곡 쪽 하산길은 응달이라 겨우내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있었다.

7분 능선 주목 군락지의 몇몇 큰 주목 주변에는 보호 울타리를 쳐 두었는데 그 위에 예사롭지 않은 눈 뭉치 몇 개가 놓여 있어 유심히 보니 오리 두 마리와 펭귄 세 마리였다. 특히 펭귄 두 마리는 마주 서서 입을 맞추고 있는데 심지어 한 마리는 조금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손으로 빚은 솜씨가 아니라고 동행에게 보라 하니 이렇게 찍어 내는 틀이 있단다. 붕어빵의 신비로운 진화다. 오리와 펭귄 틀로 이 다섯 마리를 출산한 개구쟁이 등반가는 얼마나 즐거웠을까?

전쟁의 반대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면 지금은 분명 전쟁 중이다. 코로나와 맞붙은 이 전쟁을 이겨내는 처방의 하나로 이런 해학을 떠올려 본다.

전등사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는 네 나부, 불영사 대웅전을 짊어진 거북이 두 마리, 심술궂은 소녀의 뾰로통한 얼굴을 닮은 약사 여래상, 그리고 틀로 찍어 낸 입 맞추는 눈 펭귄! 이런 해학들이 코로나와 싸워 이기는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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