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사슴〉 등 1000여 권
훼손 복원·보존 대책 없어
지자체 관심·예산 필요해
시민 공유방안 고민해야

▲ 이달균 시인.

창신대 중앙도서관 2층에 문덕수문학관이 있다. 함안 출신으로 우리나라 문학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문덕수 문인이 2000년 자신이 소장하던 책 2만여 권과 서화 260여 점, 도자기 90여 점, 수석·기념품 등 490여 점을 기증하면서 마련된 곳이다. 문덕수 시인은 지난해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문덕수문학관이 올해로 21주년을 맞는다. 제법 가치 있는 근대 문학자료들이 많지만, 그동안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문학관 장서를 정리한 이달균 경남문협 회장이 소장 자료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글을 보내왔기에 여기 싣는다.

최근 창신대에 있는 문덕수문학관의 장서들을 이상옥 창신대 명예교수와 둘이서 5일간에 걸쳐 분류작업을 했다.

색인목록을 작성하거나 책 해설을 다는 일 등은 차후에 하기로 하고, 우선 반드시 필요한 책들과 덜 중요한 책들을 1차 분류한 것이다. 작년에 문덕수 선생께서 별세하였고, 문학관 개관 20년을 맞은 해이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작업에 착수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매캐한 책 먼지 속에서의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금방 희열로 바뀌었다. 아무렇게나 꽂아 둔 서책들 속에서 보물처럼 진귀한 서적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감동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유명 문인들의 저서를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조사하다니. 문학을 하는 후학으로서는 이보다 영광스러운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한마디로 문덕수문학관은 근대문학박물관이었다. 이 귀한 책들을 이렇게 내버려두었다니, 하마터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도 못한 채 헌책 취급으로 사장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책 몇 권만 소개해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현재 3~4권 정도가 있다고 알려진 백석의 <사슴>,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문학유물'로 지정한 월북작가 설정식의 <종>, 만해기념관에 소장되어 널리 회자되고 있는 <님의 침묵>, 이 밖에도 김억의 <오뇌의 무도>, 이은상의 <무상>,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심훈의 <그날이 오면>, 이광수의 <금강산 유기>, 권환의 <결빙>, 정인보의 <담원시조>, 정지용의 <백록담>,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청록파 3인의 <청록집> 등 고색창연한 초간본들이 먼저 기억난다.

이곳에는 이들 작품집 외에도 일제강점기 카프 문학 발자취를 볼 수 있는 <건설기의 조선문학>, 우리말의 범위, 글자의 발생 및 글자의 종류 등을 세세히 엮은 <조선문학급어학사>, 조지훈의 <시의 원리>, 조연현 평론집 <문학과 사상> 등과 <신소설>을 비롯한 많은 창간호, <문장>을 비롯한 잡지들, 근대문학기의 연구서들이 즐비하다.

대충 일별해 봐도 50년대 이전 희귀 근대문학 서적은 500권이 넘고, 영서, 일서 등의 외국 서적까지 포함하면 1000권이 훨씬 넘어 보인다. 문덕수 선생은 생전에 우리나라 책은 물론 희귀 외국서적에 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다고 하니, 전문가의 자세한 감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서적들의 안전한 보관을 위한 대책 마련이다.

오래된 고서들은 종이가 바래어 부스러지고 있었고, 장정은 낡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것도 허다하며 아예 표지가 사라져가는 것들도 상당수다.

이들 서적은 전문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냥 책꽂이를 장식하는 책이어서는 안되기에 제대로 된 보관과 진열 공간이 필요하다. 도난방지, CCTV 등 시급한 일은 한둘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문학관을 대학 내에 두기보다 접근성이 좋은 시내로 옮겨 시민과 공유토록 하는 방안은 어떨까.

이 책들은 창신대만의 것이 아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창원, 우리 경남의 유산이다. 당시 출판 사정으로는 얼마 찍지 않은 책들이기에 그 소중함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덕수문학관을 이끌어갈 관장 임명도 고려할만하다. 경남문학관, 김달진문학관 등은 전문가인 관장 책임하에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진해에 있는 경남문학관에도 수백 권의 귀중한 장서들이 있다. 오래된 서적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보관이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지자체의 관심과 예산의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그래도 문덕수문학관의 미래는 나아 보인다. 육영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부영그룹이 창신대를 운영하고 있어 이들 진귀한 책들의 보관과 활성화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품위는 여러 요인으로 작용한다. 역사가 그렇고, 취업률이 그렇다.

하지만, 품격은 눈에 드러나는 실용의 것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한국 근대 지성의 보고를 창신대가 잘 활용한다면 법고창신의 이념을 실천하는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