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전파 주범으로 내몰린 새·멧돼지
욕심덩어리 인간 역공하기 전에 공존을

만약에. 까마귀와 까치, 비둘기들이 인간을 공격해 온다면. 떼로 날아다니며 사람을 쪼아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물론 현실보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 제임스 페터슨이 쓴 소설 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동명 소설 를 기반으로 제작된 미국 드라마에서는 이런 장면이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새뿐만 아니라 돌연변이로 인해 온갖 야생동물들이 꽤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되고, 더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드라마는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의 동물이란 설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얼마 전 혹독한 한파가 닥쳐왔을 때 겨울나고 있는 새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 주변을 둘러본 적이 있다. 함안과 의령 사이 남강에 수천 마리의 고니와 기러기들이 보였다. 강과 늪이 꽁꽁 얼었을 때는 먹이를 찾지 못해 종일 웅크리고만 있었다. 어디서 먹이를 구하는지 이곳저곳 살펴보는데 마을 한가운데 있는 아주 조그만 늪에서 300여 마리나 되는 천연기념물 고니들이 분주히 먹이를 찾고 있다.

고니들은 아주 시끄러운(?) 소리로 의사소통하는데 큰 목소리로 대화 나누던 고니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 길게 줄을 선다. 더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차례대로 날아오르려는 낌새다. 고니들 행동이 갑자기 이상해진 이유는 바로 밝혀졌다. 빨간 옷 입은 동네 어르신이 늪에 쓰레기 버리려 나타난 것이다. 늪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불을 피우는 순간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조리 하늘로 날아오른다. 인간을 혹독하고 매서운 한파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인식한 모양이다.

어느 때부턴가 인간들은 하늘 나는 야생 조류들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옮기는 주범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가금류 농가 처지에선 어쨌든 멀리 쫓아내야 할 성가신 존재들에 불과하겠지만 거꾸로 새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겠다 싶다. 새뿐만 아니라 야생 멧돼지들도 '악의 축'으로 몰려 보이는 족족 죽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차단하기 위한 사투가 이어지면서다. 그러고 보니 야생동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미국 드라마 속 상황 설정이 일면 이해가 된다. 새들과 멧돼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쫓기고, 때론 사지로 내몰리며 얼마나 화가 났을까? 야생동물들이 높은 지능을 갖게 되어 해도 해도 너무한 욕심 덩어리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영화나 드라마 속 그런 장면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어느새 봄이 찾아왔다. 이제 겨울 철새들은 먼 북쪽 고향으로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매화꽃도 하나둘씩 피어난다. 노란 복수초꽃 소식도 들려온다.

해마다 이맘때쯤. 2월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습지의 날은 국제습지협약의 내용 그리고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정한 날이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모든 생명체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조그맣고 하찮게 보이는 습지라도 유심히 살펴보면 온갖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물 마시고, 먹이 찾고, 산란과 양육 이어가는 아주 소중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참다못한 야생동물들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 인간을 공격해 오기 전에, 지금이라도 어서 빨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야생동물들이 공존할 방법을 찾는 일. 뭇 생명 소중함 깨닫는 생태·환경 교육도 늘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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