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방심에 '눈먼 자들의 도시'된 진주
원치 않는 오명 뒤집어쓰지 않도록 해야

'차이콥스키'를 발음하는 김미숙의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달달하고 기름지다. 나이 들어 어조에 탁성이 배니 외려 더 푸근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나 <가정 음악실>이거나 그녀에 의해 소개되는 그 어떤 선율과 가창에도 뒤지지 않는 매혹적인 악기가 그녀의 목소리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 짬짬이 이어지는 그녀의 '소리'는 그게 소소한 일상의 푸념이라도 우아한 격조가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 그녀가 '사천'과의 도시 통합으로 지명에서 사라져버린 '삼천포'에 관한 아쉬움을 말하니 공연히 아침부터 짠해진다. "잘나가다 삼천포" 운운이 익은말이 되어 자기 고장이 마치 '잘못 들어선 길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것을 두고 삼천포 사람들은 불쾌해했었다. 김미숙의 토로대로 지근에 사는 우리로선 그 똑떨어지는 발음처럼 그저 좋아라 여겼던 풍성한 어항이었음에도 말이다. 그 애꿎은 관용어의 유래로 지목된 진삼선은 지금 녹슨 철길의 흔적만 군데군데 남아있다. 자갈길에 노선버스조차 드문드문하던 시절 사천 삼천포 청년들에게 진삼선은 학교가 있는 진주로 도달하는 긴요한 통학로였고 진주 사는 우리에겐 가근방 유일한 해수욕장인 '남일대'로 이르는 설레는 행로였다. 역과 역 사이 산지사방의 삽짝을 나서 철길을 타고 역을 향해 뛰던 아이들이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면 궁량 깊은 기관사 아저씨가 '끼이익' 그 육중한 것을 세워 담아 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녹아있고 코끼리바위와 노산공원의 추상이 어려 있는 기억의 곳간이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도에서 시계가 그어졌건 사라졌건 바다 보고 싶을 땐 무시로 달려가는 곳이 삼천포다. 사천 용현을 지나 남양동에서 바로 질러 선구동 쪽으로 가면 곧장 삼천포로 관통해 들어가지만 그건 '길 맛' 따질 겨를이 없을 때의 선택이다. 남양 사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닭 똥내 나는 묵은 길을 따라 모충공원 모랭이를 끼고 돌아서면 스윽 바다가 올라온다. 광포 카페촌을 지나 영복마을을 굽어 실안으로 향하는 길에 오르면 갯내 물씬한 삼천포가 여전히 거기 있는 것이다.

"'벌거지'가 설친다 캐 사도 진주는 청정지역이다." 대구·서울·대전 가근방에 역병이 돌아 방역 당국이 숭어뜀을 뛰고 TV에선 연신 "조심조심"을 되뇌므로 그 인근서 고초를 겪는 친지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며 으스대던 말이었다. 두엇 도계를 넘어온 코로나가 있어 잠시 움츠렸지만 잽싼 조처로 더는 확산하지 않으니 이내 데면데면해졌다. 불은 강 건너에 있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통반장들이 떼 지어 제주도를 다녀오며 집단감염이 일어나니 당장 분위기가 새파래졌다. 시내 전역에 감염자가 생겨 그이와 동선이 겹치는 이를 찾는 긴급문자가 바리바리 손바닥에 당도하고 상봉동 기도원에서 또 줄줄이 감염자가 나와 뉴스 시간마다 진주가 호명되니 그제야 도시가 통째로 움츠러들었다. 눈만 내놓은 채 모두 꼭꼭 닫아걸고 오가질 않는 미증유의 세상을 본다. 남강 변 산책로에 하나같이 마스크로 가린 채 묵묵히 걷는 군상의 행렬을 보며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린다.

삼천포에 이르는 새 길을 얻었다. 진양호 뒤쪽 수문을 나서 유수 가산을 타고 내려온 강물이 바다와 만난 것이 항공우주박물관이 있는 유천리 앞 사천만이라. 바다를 물고 시작되는 길이 삼천포 실안까지 막힘없이 열린 것이다. '비대면'의 혹독한 시절, 해안 도로를 헤맨다. 떨어져 '삐대는 것'이 나라 구하는 길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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